아동 인권존중 운동의 선각자를 통해 본 어린이날의 의미
어린이날은 어른들에 의해 함부로 대우받던 어린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자는 취지로 소파 방정환에 의해 어린이날이 제정되었다. 어린이날이 제정된 지 100여년이 다가 오지만 여전히 어린이들은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 더 많이 놓여 있는 실정이다. 아동학대, 유기, 방임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정환이 발표한 어린이 공약 3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야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야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이다. 즉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할 것, 근로 착취를 금할 것, 여가를 선용하도록 할 것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는 고베에서 평생 고아들과 함께 지낸 사람이다. 그는 고급관료의 아버지가 소실을 두어 낳은 자식으로 설움 속에 자랐다. 열 다섯 살에 기독교를 접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고베신학대학교를 나와 미국 프린스턴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유학 후 다시 고베로 돌아와 평생 어려운 아이들과 함께 한다. 그는 고아를 키우고 무료급식과 무상교육 등 다양한 구제 사업을 벌였다.
영국의 에글렌타인 젭은 옥스포드대학을 나와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굶주리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눈을 돌린다. 그녀는 1919년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서 "굶주림을 물리치자"라는 제목과 함께 기아에 시달리는 오스트리아 어린이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를 나눠주다 체포된다. 세계대전 중 적국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유죄 선고를 받았으나 그 취지에 공감한 재판장이 벌금 5파운드를 선고한다. 검찰은 5파운드를 기부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지부를 두고 있는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기금의 시작이다.
그는 1923년 아동권리선언문 초안을 발표했다. 어린이를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1년 뒤인 1924년 국제연맹(현재, UN)에서 제네바 선언으로 채택된 아동권리선언의 내용은 아동의 정상적 발달을 위한 물질적, 정신적 지원, 생존을 위한 기초 사항의 보장, 사회적 존재로서의 성장과 유지를 위한 교육권 제공, 노동 착취로부터의 보호 등을 다루고 있다.
평생을 불우한 어린이들을 돌본 또 한 사람이 있다. 폴란드 출신 의사이자 교육학자였던 야누스 코르착이다. 그가 고아원 원장으로 있던 1942년 8월에 독일 병사들이 들이닥친다. 그는 학살을 예감하고 20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옷을 단정히 입히고 가방에 각자 좋아하는 책이나 장난감을 넣게 한 후 소풍가듯 가스실로 향한다. 그는 트레블링카 수용소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한줄기 연기로 사라진다.
1979년 유엔은 코르착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아동의 해로 정한다. 10년 뒤인 1989년에는 폴란드가 발의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만장일치로 채택된다. 협약에는 아동의 생존의 권리, 보호의 권리, 발달의 권리, 참여의 권리 등 4개 권리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1991년에 협약에 비준했다. 유엔에서는 11월 20일을 세계 아동의 날(Universal Children’s Day)로 기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세계 아동의 날이 있는 주간을 ‘아동권리주간’으로 선정했다.
우리나라에 어린이날이 제정된 지 99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비준한지 31년, 아동권리주간을 선포한지 17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나라 많은 어린이들은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부모, 어른들에 의해 신체적, 심리적, 성적, 언어적…등 각종 학대에 노출되어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국가적으로 아동 복지수준은 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이다. 아동복지를 투자로 보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비용으로 보고 있다.
'동심여선(童心如仙)'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 방정환선생의 묘비명이다. "아이들을 밀지 마세요." 죽음을 향해 가스실로 가는 중 아이들을 미는 독일 군인들에게 야뉴스 코르착 한 말이다. "어른들에게 혼이 날 때 아이들이 침묵하는 것은 사실을 얘기 할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야뉴스 코르착)." 어린이의 마음을 읽고 있다.
나는 유년시절 어린이날이라고 특별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도 행복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억지로 공부하라고 하지 않고, 그냥 사랑을 주셨기 때문이다. 지금의 어린이들은 물질적으로 많은 선물은 받지만 행복하지 못하다. 부모가 학업과 관련한 일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최근 강남 3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우리나라 어린이의 현주소를 잘 드러낸다. 어린 영아들 절반 이상이 심리치료를 받고 있단다.
동네 놀이터에서 주머니에 유리조각이나 쇠 조각 등을 주워 넣었던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를 비롯하여, 방정환, 가가와 도요히코, 에글렌타인 젭, 야뉴스 코르착. 연초록의 오월 어린이날,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한 그들이 그리운 날이다. 어른들이 어린이를 존중하는 정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