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밤에 내가 강의 중일 때, 시댁 형님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집에 도착해서야 전화기를 확인했더니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나는 전화기는 옆에 두고 그날 올려야 하는 칼럼베껴쓰기, 글쓰기 등을 했다. 남편이 다른 때 운동 갔다 오는 시간보다 늦게 들어왔다. 나는 운동 갔다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남편이 말이 없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전화하면 전화를 받아야지...”
조금 화난 목소리리다. 나는 사정을 얘기했다. 요즈음은 녹화 강의나 실시간 강의를 주로 하므로 전화 소리를 무음으로 해놓을 때가 많다. 강의하지 않을 때는 진동이나 소리로 전환해 놓는 게 좋겠지만, 잊어버리거나 집중해서 일할 때는 그냥 무음으로 해 놓는다. 그러다 보니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전화기를 받더니 남편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귀가 후 글쓰기를 하던 시간이었다. 무음이었고, 집중해서 글을 쓰느라 전화를 의식하지 못했다. 다른 때 같으면, 무음이더라도 화면을 펼쳐 놓고 전화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기도 하는데 그날은 그리 못했다.
“큰형님이 돌아가셨잖아”라고 한다.
“뭐? 무슨 소리야.”
큰형님은 남편 사촌 형님을 말한다. 결혼 후 지금까지 남편은 명절 때면 과일을 사 들고 인사드린 분이었다. 나와 같이 간 경우도 있었고, 남편 혼자 다녀오는 때도 있었다. 인품이 온화한 분으로 집안일을 앞장서서 하셨다. 시골에서 살다가 40여 년 전 서울 근교에 정착해서 농사를 지으며, 마을 이장을 비롯해 지역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신 분이었다. 연세는 70대 초반이었다. 평생 농사가 주업이셨는데, 이생의 마지막도 농사일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유족의 충격이 너무 커서 아직 자세한 사고 경위를 쓰지 못하겠다.
사정상 4일장을 치렀다. 남편은 직장을 오가며 내내 장례식을 지켰고 어제 발인 때는 휴가를 냈다. 나는 조문을 하루 다녀왔다. 장례식장에는 고인이 평소 베풀며 산 삶을 대변하듯 많은 분들이 꽃으로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있었다. 남편에 말에 의하면 막내 사위는 ‘꺽꺽’거리며 울더란다. 또 같이 지역활동을 하신 분은 장례식장이 떠날갈 듯 통곡 했단다. 발인도 함께 했으면 하는 남편의 바람이 있어, 고인을 봉안하는 곳으로 바로 갔다. 남편은 새벽에 나가 발인식, 마을 노제, 화장장, 봉안하는 곳까지 함께했다. 봉안은 선산이 있는데, 반려자의 바람으로 집 가까이 모시기로 했다. 부부 사이가 좋아 밤에 발이라도 얹고 자지 않으면 잠을 못잔다는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하다는 바람인 듯하다.
나는 처음으로 사찰에서 고인이 되신분들을 모시는 공간에 갔다. 산 아래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었다. 산 쪽으로 땅굴처럼 넓게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현재 만 분 정도의 고인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고인들이 모셔진 공간은 편안했다. 직계가족들은 모실 공간을 위쪽으로 할지, 중간으로 할지, 아래쪽으로 할지 얘기를 나눴다. 나는 직계는 아니기에 멀찍이 떨어져 지켜봤다. 딸들은 아래쪽으로 자라잡아, 앉아서 오랜 시간 바라보고 싶다는 듯했다. 결국 중간지점으로 정했다 한다.
화장을 마치고 한 줌 재로 변한 고인 유골함 옆에, 등산복을 입으신 고인의 살아생전 사진이 놓여 있었다. 농부로 평생을 사셨고, 생의 마지막 날도 농사일을 하시다, 빨간 단풍 구경 가신 듯하다. 사찰 경내에는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