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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순자 Dec 10. 2023

기록은 힘이다


최순자(2023). 기록은 힘이다.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2023. 12. 4.



2023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 내가 대학 강의 외 한 굵직한 일 중 하나는 기록남기기였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한국전쟁을 경험한 어르신을 몇 차례 만나 인터뷰했다. 여러 어르신 체험이 녹여진 공저로 <6.26전쟁과 파주 여성>을 지난 7월에 세상에 내놨다. 이 일은 파주중앙도서관 기획 사업이었다.


또 7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세 달 동안 마을 어르신 열두 분의 삶을 인터뷰해서 <신교동 마을 한 권의 사람책, 세월 따라 흐르는 인생 이야기> 생애 구술사를 엮어 냈다. 초등학교 기성회비를 못 내 미군 부대에서 포탄 주워 팔았던 일 등 그 시대의 아픔 등이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이는 포천시중앙도서관 독서동아리네트워크 의뢰로 한 작업이었다.


한편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주관하는 근대기록문화조사원으로 1979년까지의 개인 사진이나 문서 등을 수집, 디지털로 해당 사이트에 등록해 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는 내가 기록남기기에 의미를 두고 지원, 서류전형, 면접, 교육 과정을 거쳐 시작한 일이다. 정부에서 내년 예산을 약 73% 삭감했다고 한다. 많이 축소 운영될 듯하다. 


나는 후대에 기록으로 남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대학 시절 학과 학회장을 맡으면서 그 일을 위해 노력한 적도 있다. 교내 축제 때 학과에서 운영한 주점에서 남긴 이익금으로 철제로 된 캐비닛을 샀다. 이를 사기 위해 혼자 서울 중심의 을지로에 가서 직접 골랐다. 가게 주인이 운전하는 트럭에 싣고 와서 학과 학생회실에 놓았다. 


철제로 샀던 것은 자료의 영구 보존을 위해서였다. 학생들이 끄적끄적해 둔 날적이나, 내가 창간호로 발행한 학과 신문 외 답사나 학과 관련 자료를 보관해서 후배들에게 남겨주자는 취지였다. 언젠가 내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있었는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기록남기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인자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광에 있던 아버지만 열고 닫던 서랍에서 수첩을 발견했다. 조상의 기일, 가족의 태어난 생시, 논밭의 평수,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주소 등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또 언제 누구에게, 어디서 돈을 빌렸다가 갚았는지에 대한 채무장도 여러 권이었다. 6형제를 기르면서 빈농으로 현금이 없어 필요할 때마다 빌렸다가 농사지어 갚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아버지의 기록이 남아있기에 그때의 우리 가정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 부모의 수고로움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이는 마을, 사회, 국사로 마찬가지일 테다. 


기록은 힘이다. 개인의 기록이 우리 역사가 된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글, 사진, 영상 등 무엇이든지 기록으로 남길 일이다. 부끄러운 삶도 있겠지만, 그것도 역사다. 매일의 기록을 통해 성찰하며 조금씩 나아지면 되지 않을까 싶다. 


* 사진은 11월 23~24일 근대기록조사원 연수 중, 한국국학진흥원, 안동민속박물관, 월영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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