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산 최순자(2024). 먼저 깨어난 개구리의 최후.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3. 7.
지난 3월 5일이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이었다. 하루 전날 늦은 오후였다. 보장산, 종자산, 향로봉, 삼형제봉, 관인봉을 바라보며, 이웃의 텃밭에서 싹을 내밀고 있는 마늘, 파를 눈에 넣고 마을 산책 중이었다. 길 가운데 까만 게 보인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어 살펴봤다. 죽은 개구리였다. 성질 급한 녀석이 깨어나야 할 제때보다 먼저 나왔다가 길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지나다니는 자동차에 깔렸을 테다. 죽은 지 며칠이 된 듯 납작해져 누워 있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떠나는 나를 아버지가 불러 앉혔다. “먼 길 가는 너에게 두 가지만 당부하마. 첫째는 형제가 많으니 항상 우애하도록 해라. 둘째는 살아가면서 너무 앞서지도 말고 뒤서지도 마라.”라고 했다. 꽃과 음악을 좋아한 아버지답게 ‘사랑과 여유’를 갖고 살아가라는 타이름이었다.
겨울을 지내고 땅속에서 먼저 나왔다가 길에서 죽은 개구리를 보니, 아버지가 한 “너무 앞서지 마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들 다섯 속에 하나밖에 없는 양념 딸이 너무 앞서려고 하다 고생할까 봐 그랬으리라. 지금 생각하니 중학생이 된 딸의 귀가를 마을 어귀에 앉아 기다렸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살아오면서 아버지 타이름을 순간순간 늘 새기며 살지는 못했다. 첫 번째 타이름은 지키려고 늘 노력한다. 두 번째 타이름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먼저 나왔다가 최후를 맞이한 개구리가 다시 한번 삶의 태도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