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
우리 집 거실 정면에 걸린 게 뭔지 알지? 흰 바탕에 검정 글씨 한자로 써진 가훈 ‘언근신행(言謹愼行)’이지. ‘말과 행동은 신중하게 하자,’는 뜻이지. 가정을 꾸린지 얼마 안 돼, 이천으로 노랗게 핀 산수유를 보러 갔지. 부침개, 막걸리, 어묵.... 먹거리가 풍성하던 축제 한마당도 펼쳐지고 있었지. 한쪽에서 어르신들이 가훈도 써주고 계셨지. 그때 부부간에 말과 행동을 조심하자는 의미로 써 온 글이지.
속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들어 봤지. 할머니가 종종 하시는 “비단이 곱네, 뭣이 곱네 해도, 말같이 고운 게 없다.”고도 있지. 옛 어르신들의 지혜가 담겨있지. 이 속담들은 상대에게 따뜻한 말,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한다는 뜻이라 본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멋진 말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자신의 위치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슴에 새겨진 말, 여기가 텅 빈 것 같다
힘이 돼 주는 말, 대기 만성하여 큰 인물이 될 것이다
자신감을 갖게 해 준 말, 글을 잘 쓴다
그동안 내가 들어 온 말 중, 가슴에 새겨진 말을 생각해 본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이다. 가난한 생활을 하던 나는 명절 때 차비를 아끼려고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형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고향에 가지 못한 나는 허전한 마음을 안고, 효창공원에 잠들어 계신 백범 김구 선생을 참배했었지. 다른 일로 고향에 내려갔다. 그때 할머니가 당신의 가슴을 가르치며, “다른 자식이 다와도 네가 오지 않으면, 여기가 텅 빈 것 같다.”라고 하시더구나.
부모 마음이겠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자식이 빠져도 할머니는 같은 마음일 테지. 힘들 때마다 할머니가 그때 하셨던 말씀을 떠오르곤 한단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 부모는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존재이지. 그 믿음과 확신이 있다는 것은 내가 행복 살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들은 말 중, 나에게 힘이 돼 주고 있는 말도 생각해 본다. 이와타테 교우코라는 대학원 지도교수에게 국제로타리 장학생 추천서를 부탁하러 갔지. 그때, “자네는 외국인이지만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이 일본 학생들에게도 자극을 주네”, “신념이 강해서 대기 만성하여 큰 인물이 될걸세”. 엄하게 생각했던 지도교수가 나에게 구두로 하신 말씀이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아직 부족하다고 느낄 때 떠올리는 말이지.
최근에 들은 말 중, 내가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고 정진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파주 DMZ 판문점 JSA 여행학교’에 참여하고 있단다. 여행학교에서 민통선을 다녀와서 그 감상을 제출했지. 나는 ‘경계를 넘나드는 바람처럼’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지. 내용은 내 경험과 백기완, 문익환 선생과 만남, 그분들의 어록을 넣어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말했지. 그 글에 대해 글쓰기 전문 강사의 첨삭 지도가 있었다.
“제목이 돋보인다,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문장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다, 사건과 사건, 이야기와 이야기를 엮는 능력도 탁월하다, 구성력도 뛰어나다, 인용구가 돋보인다.”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으로 내 글을 평해 줬더구나. 몇 개의 오타 외에는 수정할 게 없다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쓰지 못한 점, 프린트해서 퇴고하지 못해 나온 오타는 또 한 번 그 중요성을 생각하게 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글을 짓고, 벗을 사귀는 일이 인생 최고의 경지이다.”라고 했지. 이 말대로 나도 글을 잘 쓰고 싶어 체계적으로 글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10년간 노력해 왔단다. 앞의 첨삭 내용은 처음으로 글쓰기 전문 강사에게 구체적으로 받은 평이다. 늘 글쓰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자신감을 주더구나. 앞으로 내 생각을 글로 써나가는 데 주저함이 덜할 것 같구나. 물론 글을 쓸 때는 많이 생각하고, 퇴고에도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함도 염두에 두면서 말이야.
위치에 맞는 말, 신언서판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 자각하기
습관처럼 해야 할 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할 때는 위치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고대 중국에서는 인재를 뽑을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고려했다고 하지. 옷차림이나 표정이 그 직책에 맞고, 하는 말과 글이 그래야 한다는 것이고, 판단력도 갖춰야 한다는 뜻이라 본다. 우리 말 중에도 ‘~답게’라는 말이 있지. 부모는 부모답게, 선생은 선생답게, 지도자는 지도자다와야 한다는 뜻이겠지. 이번 기회에 나도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맞는, 답게를 생각해 본다.
말을 하다 보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지. “너 때문에, 맨날 너는 그러니?, 그러면 그렇지!” 등. 내가 들은 말 중 상처받은 말은 “그러면 그렇지!”이다. 나는 여행을 가거나 밖에서 식사할 때 소박한 먹거리를 원한다. 그런데 같이 간 가족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며, 비싼 음식을 시키는 편이지, 그때 늘 듣던 말이다. 이건 내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들을 것 같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준 적이 있을 테고, 지금도 상처를 주기도 하겠지. 잘 몰랐는데, 친구가 내가 한 말 중, “그래 알았어.”라고 하는 말에 상처를 받는다고 하더구나. 이때 ‘알았어.’는 내가 상대를 말을 중간에 끊을 때 쓰는 말이지. 최근 부부 사이에도 이런 일이 있었단다. 전화를 주고받을 때, 내가 상대가 할 말을 다 하지 않았는데 끊을 때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에게 “앞으로는 전화 끊어도 되냐고 물은 다음 끊어.”라고 하더구나.
가족, 친구, 연인 등 가까운 사이에는 서로의 무의식이 만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 경우가 많지. 그러므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겠지. 내 무의식이 아닌 의식이 말할 수 있게 말이야. 의사소통의 핵심은 내가 말을 할 때는 감정적으로 하지 말고 정확하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 상대의 말을 들을 때는 끝까지 잘 들어야 한다고 하지. 나도 그 누구와 대화를 하든 깊이 새겨야겠다.
주야,
내가 습관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이다. 오래 전에 김정일 정신분석학자가 쓴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라는 책을 읽었다. 상담가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더란다. 그것은 ‘감사를 모르는 점’이라고 하더구나. 그는 부모로서 어린 딸에게 신경 썼던 교육이 하나 있었단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게 했다고 하더구나.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겠지.
남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를 습관처럼 하려고 한다. 너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네가 참으로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기에. 주야, 고마워. 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게 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