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인도에서 발견한 편안한 얼굴

by 최순자

주야, 오늘은 인도에 다녀 온 감상을 들려줄 게.


“나는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건 우리 인간이 갖는 영원한 질문이다. ······ 문학의 궁극도 인생에 대한 탐구이니 그 길은 같은 길이 아닐까? 그 궁극의 작품을 위해 신비의 땅 인도로 향한다. 헤르만헤세, 카잔차키스, 주제 사라마구 같은 작가들이 인류 구원을 꿈꾸며 가보고 싶어 했던 그 길을 떠나 보려 한다.”


3년 전 연말에 11일 간 인도를 다녀왔다. 그때 동행한 작가 조정래 선생이 한 말씀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8시간 하늘을 날아 한국보다 3시간 30분 늦은 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을 통해 인도에 발을 디뎠다. 여행지는 네팔 룸비니를 비롯하여 인도인만큼 불교 관련 유적지와 갠즈스강, 왕들이 살았던 성(城), 타지마할, 간디기념관 등을 둘러보았다.


여행 이틀째에 머문 갠즈스강을 끼고 있는 바라나시에서 가장 인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리에는 소가 어슬렁어슬렁 다니면서 먹이를 먹거나 마굿간인듯 아예 도로에 누워 있다. 돼지와 개들도 도로와 인도를 다니거나 쓰레기장에서 먹을거리를 열심히 찾아 먹는다. 도로변 고가 밑에는 허름한 차림과 살림살이라 할 수 없는 서너 가지 단촐한 도구만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교통경찰은 나무막대기를 들고 도로를 가득채운 차와 사람들의 통행을 안내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혼돈과 무질서, 소란스러움, 지저분함이 공존해 있다. 그러나 어느 시인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라고 했듯이 자세히 보고 오래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포용과 질서와 편안함이 있다.


바라나시의 혼잡한 도심 거리를 잘도 빠져 나가는 인력거를 타고 도착한 갠즈스강은 인간의 생과 사를 품고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나무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니 알려진 대로 강가에 화장터가 있다. 오늘은 어디서 온 그 누가 육신을 태우고 다음 생을 약속하고 있는 것일까? 대여섯 곳 장작더미에 화염이 피어오르고 있다. 뼛가루는 그들이 영원히 잠들고 싶어 하는 갠즈스강에 뿌려질 것이며, 누군가는 그 강물에서 지은 죄를 씻기 위해 목욕재계를 할 것이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벌판에는 이모작으로 키우는 밀이 파란 싹을 틔우며 얼굴을 내밀고 있고, 노란 유채꽃이 우리네 농촌 풍경을 떠올리게 하며 유년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간디기념관 입구에 써진 ‘나의 삶이 나의 메시지다(MY LIFE IS MY MESSAGE).’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이정표를 세워준다.


방문한 곳마다 손바닥을 내밀며 여행객의 보시를 바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신발을 신지 않은 어린아이, 악기를 연주하며 ‘석가모니’를 읊조리던 소녀, 다리가 없는 청년, 더 마를 것이 없어 보이는 할머니 등 숱한 눈빛과 마주쳤다. 또 석가가 태어난 곳, 도를 닦고 설법을 했던 곳, 열반을 했던 곳에서는 그 뒤를 따르고자 하는 수많은 수행자들을 만났다.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라보는 우리를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편안한 얼굴이다. 어떻게 구걸하는 사람과 도를 닦는 사람의 얼굴이 그토록 편안함으로 같을 수 있을까.


우리는 나이 사십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듣고 알고 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얼굴에 묻어난다는 것일 터이다.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생각, 즉 그 사람의 영혼이다. 인도인들은 태어나서부터 좋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모양이다. 또 자신의 존재 그 자체에 감사하며 안분지족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는 저리 얼굴에 편안함이 자연스레 나타날 수가 없다. 단 한사람도 예외 없이 편안함을 가진 인도인 앞에서는 의지를 가진 얼굴조차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 자체에 감사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도인에게서 좋은 생각으로 담담하게 살아가라는 편안할 안(安)자를 선물 받았다. 더 나이 들어 내 얼굴에 편안함이 묻어나길 바래본다.


너도 그러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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