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을 꿈
꾸자

by 최순자

주야,


오늘은 영혼과 자유로움에 대해 얘기나누고 싶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나는 약 40년 간 수첩에 일지를 쓰고 있다. 세밑이나 새해에 장만한 수첩에는 내가 한 해 동안 늘 가슴에 지니고 싶은 문구를 쓴다. 5년 전에 수첩에 쓴 문구이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걸림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위의 경구는 내가 좋아하는 분, 법정 스님과 김선우 시인이 좋아하기도 한다. 법정 스님은 강원도 오두막에 거처하실 때 벽에 붙여놓았고, 김선우 시인은 책상에 붙여놓고 있다고 한다.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고 싶은 삶을 반 세기 이전에 이미 살다간 사람이 있다.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이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무대인 크레타섬에 있는 그의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3년 전, 작가 조정래 선생과 몇 명의 일행이 인도와 네팔을 다녀왔다. 그때 떠나면서 그는 “나는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건 우리 인간이 갖는 영원한 질문이다. ······ 문학의 궁극도 인생에 대한 탐구이니 그 길은 같은 길이 아닐까? 그 궁극의 작품을 위해 신비의 땅 인도로 향한다. 헤르만헤세, 카잔차키스, 주제 사라마구 같은 작가들이 인류 구원을 꿈꾸며 가보고 싶어 했던 그 길을 떠나 보려 한다.”고 했다. 조 선생은 카잔차키스를 인류의 구원을 꿈꿨던 구도자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선 1915년에 카잔차키스는 풋풋한 인간 냄새를 풍기는 노동자 조르바를 만난다. 조르바는 몸으로 인생을 산 경험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카잔차키스는 인생을 배운다. 광산업을 위해 섬으로 떠났다가, 그 사업이 망하고 나서는 우리가 언제가 홀로 세상을 떠나듯 각자 길을 걷는다.


다독가인 내가 한 번에 내리 읽지 못한 책이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왜 그런지 빨리 읽어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카잔차키스와 오랫동안 동행하고 싶은 내 무의식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조르바는 TV 프로그램 중 일부러 찾아서 보지 않지만, 어쩌다 시간대가 맞아서 보는데 내가 좋아하는 ‘자연인’들과 닮았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누군가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수많은 직업 중 가장 자기다운 삶은 사는 사람은 ‘성직자’와 ‘예술가’라 생각한다. 인생을 산다는 의미는 자기로 살았을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밀’이라는 교육서를 쓴 장 장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 아이들이 ‘본성대로 살도록 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는 반 백년이 된 나이 오십을 앞두고 ‘오십앓이’를 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가서 성찰하다 오고 싶었다. 그때 간 곳이 영국의 제2도시 버밍엄이었다. 한 달 예정으로 떠났다가, 갑자기 집안에 일이 생겨, 예약해 둔 파리행 열차를 타보지 못하고 약 이십일 만에 귀국한 한 적이 있다.


그때 가보지 못한 파리를 거쳐 카잔차키스를 만나러 그리스 크레타섬을 가보고 싶다. 그의 묘비명 앞에 서서, 나의 묘비명도 생각해 보련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묘비명은 ‘신념대로 살다 가다’이다. 영원한 자유를 꿈꿨던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보고는 나도 ‘자유를 꿈꾸며, 신념대로 살다 가다’로 바꿀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몸과 마음의 자유도 있겠지만, 나는 영혼의 자유를 꿈꾸고 싶다. 위에서 말한 숫타니파타에 새겨진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 싶다. 나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상이지만, 절실하기에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왜 영혼의 자유를 꿈꾸는가. 그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디에도 얽매이거나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영혼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별에서 왔다가 별에게 돌아가는 존재이다. 내 별을 찾아서 떠나는 그날까지 내 영혼이 혼탁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카잔차키스가 꾸었던 꿈을 나도 꾸어본다.


“내 영혼은 자유이다.”


너도 그렇지.

keyword
이전 13화91. 인도에서 발견한 편안한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