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생일날에는 생일 축하 카드를 받았다.
생일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친하게 지내자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생일날 함부로 축하를 하지 않는다.
친한 사이 면전에서 함부로 축하를 했다간 선물을 내놓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대면 카톡이나 페메로 생일 축하하며 니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라는 덕담을 건넨다.
자주 안보는 사람들끼리는 성립할 수 있는 축하방식이지만 매일 보는 지인들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초등 3학년쯤이던가.
생일을 맞은 친구가 생기면 선생님이 앞으로 불러내어 연필 한다스를 선물했고 친구들은 박수를 쳐줬다.
그 많은 아이들에게서 박수를 받으니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러다 슬슬 생일날이 선물 받는 날로 변해갔다.
축하받고 박수받는 날에서 선물 받는 날로.
이십대가 된 후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선물을 내놓으라는 식이었다.
그런 관계는 다해봤자 3-4명 정도였다.
부모님, 애인, 가족 구성원 정도. 가장 친한 절친들은 자발적으로 선물을 해주던가 파티를 열어주던가 하는 식이었다.
선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진 않더라도, 내심 내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상대방이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러다가 30대에는 선물이 뚝 끊겼다.
요즘은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생일날 현금을 입금해주신다.
남편에게는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의 판매 링크를 보낸다.
친정엄마한테서 생일선물을 받아본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생일이 되기 한달 전쯤부터는 남편이 매일 '뭐가 갖고 싶냐'고 갖고 싶은 물건에 대해 대답을 종용한다.
생일에 축하를 받지도, 선물을 받지도 못한다.
이제 생일은 나에게 있어 그냥 물건 가지는 날이다.
평소에 사고 싶었던 물건을 눈치보지 않고, 과소비에 대한 죄책감 없이 살 수 있는 날에 불과해졌다.
헌데 소비가 습관화되고 일상화되다 보니 생일 선물이 딱히 특별하지도 않다.
해마다 반복되는 생일마다 비싸고 좋은 것을 가지다보니 과소비에 무뎌져서 일상 속에서도 다소 과한 것들을 종종 사곤 한다. 그러다보니 점점 생일이 원오브뎀이 되어간다.
이젠 생일이 소비화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생일은 추억이고 기억이자 축복이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40년은 더 반복될 생일을 어떤 식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까.
우리에게 각자의 생일은 어떤 의미가 되어야 좋을까.
우리는 서로의 탄생에 진심으로 축복하는 존재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