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는 성평등주의자란 뜻이다. 때문에 나는 당연히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성평등주의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페미니스트란 용어의 의미전도 양상과 스스로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활동을 지켜보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본인이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생각해 본적이 없는 그 어떤 여자라도 여자로서 겪게 될 수 있는 다양한 핸디캡이나 장애에 대해 충분히 인지완료인 상태임과 동시에,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서양여자나 동양여자 할 것없이 누구나다. 이것은 자기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서술이 아니라 인류 공통적인 역사적 지식에 기인한 서술이다.
인류 최고의 요리사는 남자가 아니냐, 그러므로 남자가 여자보다 모든 능력에서 우월하다고 외치는 어떤 개인 남성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작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그 말에 대한 반박을 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이 개인 남성은 자기 얘기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남성의 우월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성별끼리는 한팀이라는 공동체의식과 정체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인류 최고의 무엇무엇이 남자이므로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서술은 전제부터 모순이다. 인류 최고의 무엇무엇이 된 남성은 집에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줄 부인이 있으므로, 전적으로 직업에 헌신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는 반면, 인류 최고의 무엇무엇이 되고 싶은 직업여성들은 집에서 가사일과 육아에 한발을 걸친 채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적정시간과 정신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해묵은 급여 논쟁은 어떤가. 모든 남자는 모든 여자보다 급여가 많지 않다. 그것은 다만 통계치일 뿐이다. 개인별로 비교해보면 수많은 남자들이 수많은 여자들보다 급여가 낮다. 일안하는 여성인구가 많다보니 평균에 휘말려 들어가서 통계가 그렇게 잡히는 경우,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자발적 비정규직에 몸담는 경우 등 상황적 특수성이 켜켜에 낀 통계자료를 가지고 남녀의 급여차이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이 통계를 남녀 양측이 각자 유리할때에만 선택적으로 써먹는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자신의 가부장적 이익을 공고히 하고 싶을 때 '남자가 더 벌지 않냐'고 외치고, 여자들은 '우리도 남자만큼 급여를 더 올려달라' 말하고 싶을 때만 이 통계를 가져다 쓴다. 둘다 하는 짓은 똑같다.
옛날에는 농부라는 천부적으로 부여된 직업이 하나 있고, 그게 하기 싫을 경우 공부를 해서 새로운 직업을 탐색했는데, 요즘은 양재택일의 선택지가 아니라 백지상태에서 꿈과 진로를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야 하며, 아무것도 못찾았을 경우에는 죽음보다 무서운 '충'이라는 지위를 내려받게 된다. 충도 못되면 흙이 되기도 한다.
평화로운 이상세계가 존재한다면 남녀간의 역할분담과 분업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차별적인 요소만 없다면. 생물학적 동물적 생태구조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면 성별분업이 영 틀리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모든 문제는 주입의 과정과 세뇌된 지식들간의 내적 충돌에 있는 것 같다. 다르게 보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들을 주입된 세계관으로 보면 반드시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모든 주제의 전면에 나오게 되면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가 되는 가정이 혼란해진다. 남녀문제야 그렇다 쳐도 자녀문제가 안튀어나올래야 안나올 수가 없다. 자녀문제가 자꾸 튀어나오니까 애를 안낳는 쪽으로 해결하고 싶어지고, 그러자니 결혼도 안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합리적'인 두뇌활동이 풀가동된다. 여자문제의 모든 원천은 임신과 출산인데. 임신과 출산을 안하면 모든 문제 해결이다. 그런데 애 안낳고 결혼안하면 뭐하러 계속 살게? 어차피 100년 안에 멸종할텐데. 멸종해가는 과정 중에 이미 온갖 고통을 다 겪을텐데.
능력 있으니까 돈 벌어 모아뒀다가 늙어서 시설 들어가서 귀족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시설에서 일해주는 젊은 인구가 없다면 같은 노인네들끼리 수발들건가 어쩔건가. 종족이 유지되지 못하면 돈은 가상화폐나 다름없어진다. 서비스 제공자 자체가 없는데 서비스를 살 돈만 있으면 뭐하게.
아이에게는 엄마라는 정서적 보금자리 100%와 아빠라는 물질적 배경 100%가 백백씩 양쪽에서 가드를 쳐주는 환경이 가장 이상적일 수도 있다. 50%짜리 엄마와 50%짜리 아빠와 서로 무한 바톤터치하는 환경은 나라도 싫다. 엄마에게도 친정엄마가 필요하듯 아이에게는 당연히 엄마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애초에 여자를 가정 맞춤형으로 키워놓은 것이 아니기에 힘들어진 것이다. 페미니즘이 극렬해질 수 밖에 없는 원인은 후기자본주의 사회라는 환경 그 자체에 있다.
우리 세대는 100%의 엄마와 100%의 아빠를 누리며 살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50%의 엄마와 50%의 아빠가 원래 맞는 거라며 설득시키고 적응시키려고 고군분투중이다. 북유럽이 그렇게 하니까 거봐 역시 맞다고 생각하면서. 애석하게도 북유럽은 50%의 엄마 50%의 아빠가 아니라 80%의 엄마, 80%의 아빠다. 사회전체가 우리보다 돈이 많고,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시간을 허락한다. 생후 3년간은 아무데도 안가고 집에 있고, 그 이후에는 10시쯤 어린이집에 갔다가 3시쯤 시간맞춰 퇴근하는 한쪽 부모와 하루종일 같이 있게 된다. 학교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히 부모와 자식 사이의 시간이 훨씬 길다. 그게 엄마건 아빠건. 이게 가능한 이유는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피와 살을 수탈했던 역사적 야만성에서 첫번째 원인을 찾아볼 수 있고, EU라는 경제공동체, 거대한 시장 덕에 기술집약적 지식노동이 큰 생산성을 낼 수 있어서가 두번째 이유다. 우리나라는 50%는 커녕, 엄마 30%, 아빠 30%이나 될까싶다. 엄마아빠 자기들끼리 50%씩 나눈다고 아이에게 50%가 가는 구조가 아니다. 시장은 좁아 터졌는데 어디서 돈을 벌어올까.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이 아니다. 사회 전체의 부와 한 나라가 가진 시장의 사이즈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거대한 인력산업이다. 페미니즘은 그 자체가 추구하는 순결성과 정치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논제가 아니다. 다음 세대에 대한 고려 없이 순수성만 외치는 페미니즘은 인종의 존폐문제까지 그 논제가 뻗을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력시장에서 값싸고 질좋은 여성노동자들을 가정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여성들의 감수성과 자아정체성을 계속 건드려보는 것이다. 어차피 북유럽만큼 돈 안줄거면서.
옛날 왕은 가정 내의 문제도 율령반포라는 도깨비방망이로 다 해결했는데 민주주의는 왜 아무것도 해결을 못할까. 과부는 재가하지 말랬다가 또 하랬다가 여자는 유산을 주랬다가 말랬다가 머리 모양을 이렇게 하랬다가 저렇게 하랬다가하며 사람들 심리와 가치관까지 다 조종했는데 지금은 왜 사소한 문제 하나도 해결을 못할까. 딱 법으로 남자쪽 제사만 지내지 말라고 반포하고, 처가 지위 동등하게 맞춰주고, 근로시간 남녀 딱딱 동등하게 맞춰주고, 적어도 5시에는 애들 데리러 집에 가라고 명령하면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