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고령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사람들은 '장수'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단순히 생명만 연명하는 병약한 노년보다는 튼튼하고 건강한 장수마을의 활기까지 누리고 싶어진 것이다. 여러 언론이 전세계 곳곳의 장수마을 노인들을 취재하고 연구하고 알리면서 사람들 사이에는 건강한 노년의 이면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팽배하기 시작했다.
90년대에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키워드가 한참을 유행했다. 아침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패러다임이다. 헌데, 아침형 인간에는 두 부류가 있다. 원래 아침잠이 없는 사람, 그리고 의지로 일찍 일어나는 사람. 둘 중에서 원래 아침잠이 없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가능하다. 아침형 인간이 훨씬 성실한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은 원래 아침잠이 없어서 잠이 일찍 깨는 사람들을 자동으로 신분상승시켜주기도 했다. 헌데, 아침잠이 없어서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은 저녁 9시만 되면 졸려서 정신을 못차리는 경우도 많다. 단순한 수면사이클의 차이를 성실성이란 가치과 결부시켜 그럴싸한 논리를 만들려다보니 아침잠이 많은 절대 다수는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한편 '평생 몸매관리'란 패러다임은 또 어떤가.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한다. 그러다 중년으로 접어들면 두둑한 뱃살과 늘어지는 턱살이 신체의 일부가 되고, 힘없는 노년이 되면 절대 빠지지 않을 것 같았던 온몸의 살들이 쏙 빠져나가 앙상한 뼈와 가죽만 남게 된다. 이런 사이클이 기본적이고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신체의 노화주기다.
그런데 간혹 평생 비슷한 체형과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생활 속 지켜나가는 수칙이 있거나 먹는 음식에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평생 특별한 관리나 노력을 기울여 몸매를 관리한 적이 없다. 2-3 킬로그램 정도의 체중변화에 호들갑을 떤 적은 있으나 그렇다고 단식이나 다이어트 식단, 특별 운동을 장기간 해본 적은 없다. 많이 먹어도 살이 안찌는 체질을 타고났다기 보다는 많이 먹지 못하는 체질을 타고난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평생 폭식을 하지 않고 적절한 식사량을 유지하며 살았으니 누군가는 나와 같은 무리들을 '관리'를 잘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싶어할 수도 있겠으나, 더 먹고 싶어도 못먹는 체질을 타고 나다보니 저절로 관리가 된 셈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먹을 수 있는 한계선까지는 충분히 먹는다. 자기 양보다 일부러 적게 먹거나 굶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나는 관리한 것이 아니다. 늘 포만감과 충족감을 느끼는 식사를 하고 살았다. 헌데 나와 식사량을 다르게 타고난 사람들이 나의 외형만을 닮고 싶어 인위적으로 관리하고 절제하고 산다면 하루하루 일상이 지옥일 것이다. 늘 참고, 늘 통제하고, 늘 억제 해야 한다. 그런 삶은 전반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장수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다. 장수마을 노인들이 오래 산 것은 어떠한 음식을 먹었거나 특정한 생활수칙을 꼬박꼬박 지켜서일까? 아니면 타고나기를 그런 것들만 먹기 좋아하고, 활동성이 많은 체질이었던 걸까. 활동성이 평균인 사람이 매일같이 태릉선수촌 선수들만큼 하루종일 육체를 단련하며 사는 것은 매우 어렵다. 반면, 활동성이 상당히 높은 사람이 차분히 앉아서 따분한 일과를 보내는 것도 너무 괴로운 일이다.
나는 꽤 오랜기간 전업주부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전업주부들을 접하고 교류해왔다. 게중에는 운동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 아이 케어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 집안 청소에 매진하는 사람 등 각자 좋아하는 활동, 매진하는 활동이 매우 다른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집에만 있는 같은 주부들 중에도 활동성이 상당히 높은 사람과 상당히 낮은 사람이 있다. 이들은 서로의 삶의 패턴을 모방하려 해도 모방할 수 없다. 하루 4가지의 운동을 하는 사람이 집에 틀어박혀 청소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고, 집에 앉아서 드라마보고 청소하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관리'랍시고 매일 헬스 2시간씩을 하는 삶으로 옮겨가긴 매우 어려운 것이다.
어찌보면 다들 자기 생긴대로, 타고난 결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다. 그런데 어떤 특정집단의 삶의 방식, 먹는 것, 누리는 것, 자는 시간과 깨어있는 시간까지 모방해야 잘 살 수 있다 말하고, 더 나아가 그런 삶이 정상이고 나머지는 '잘못된 것'이라 치부한다면 대다수의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부정, 비관적 인식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보통 사람들은 '내일부터라도 잘하자'며 긍정적인 여유를 되찾아보지만 일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정말로' 괴로움에 빠지기도 한다.
남을 따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남에게 나처럼 해보라고 조언하는 것도 사실 '어느정도까지'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각자가 정말 너무 다르고 비슷해지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