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눈치가 있다
나에게도 감정이 있고
나에게도 호불호가 있다
나에게도 비밀이 있고
나에게도 불쾌함이 있다
나에게도 낌새가 있고
나에게도 통찰력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없는 척하고 산다
이유인 즉슨
타인이 들으면 공감이 안될 뿐더러
오히려 쇼크를 받는 나만의 사연 때문.
사람들에겐 '사회적으로' 이러이러한 것들은 '보통' '비밀'이다'라고 여기는 것들이 몇가지있다.
가족의 흠
자기자신의 단점
타인에 대한 칭찬과 인정
그리고 위에 적힌 것들 중 한두가지라도
먼저 '오픈'을 하면
그 사람이 자신의 비밀을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곧, 그 사람은 솔직한 사람이라거나 쉬운 사람이라는 판단을 하거나
또는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 비밀을 말해준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말이다.
그건 당신들 생각일 뿐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비밀을 비밀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야만
편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가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고 엄마와 동생, 나 이렇게 셋이 쭉 함께 살았다.
아빠가 있는 척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척'은 오히려
꾸준한 연기와 설정, 변명과 핑계를 만들어 내야 했다.
친한 친구 몇명을 제외하곤 말하지 말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은 감추면 더 커진다.
사람들은 부자연스러움을 귀신같이 눈치챈다.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발견해낸 맞지 않는 아구를 맞추기 위해 의혹을 공유하고 증폭시켜나간다.
그냥 말하는 게 낫다. 처음부터 툭까놓고.
'처음'부터 오픈을 해야
생활이 무지하게 편해진다.
어차피 내 잘못도 아닌 것인데
걔네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감추고 있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30년의 경험상, 선오픈이 더 큰 이득이다.
내 성격, 어투, 습성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거나 이해를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나를 솔직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해준다.
자신들의 비밀을 스스로 알려준다.
내가 하는 말을 대게 믿는다.
나를 동정한다.
나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걸러질 사람을 애초에 거를 수 있게 된다.
이혼가정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나를 멀리하니 오히려 득이다.
나중에 배신당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혼가정에서 자란 것치고
자신들보다 훨씬 앞서나가고 완성도 있게 살아가니
속으로나 질투하고 미울 지언정
겉으로는 절대 나를 무시하거나 탄압할 수 없다.
밟는다고 밟히는 나도 아니고.
혹자는 타인에게 받는 동정이 자존심 상한다고 하나
내 경우엔 그렇지도 않다.
내가 받는 동정은 구걸해서 받는 동정이 아닌
예의를 지키는 선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혼가정에서 자랐다고
개인의 인생이 유달리 힘들 것이 없는데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고 단순하게
힘든 상황 속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으로 인정해준다.
그런 것들이 크게 보면 이득이다.
개인의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은
가정의 불화보다는
가난이다.
이혼가정이 대게 가난하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힘들 것이라는 논리구조라면
어느정도 찬성하지만
그저 집에 아빠가 들어오지 않는 점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밥먹고 학교가서 친구들과 사귀고 공부하고 실력을 쌓는 일이 힘들어질 이유 따윈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솔직히 말해, 핑계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단점을 오픈하면 지는 것인가?
철저히 내 경우지만 나는 단점을 오픈하지 않으면 미움을 받는다.
단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누구에게 해코지를 한 적도 없고
누군가를 먼저 미워해본 적도 없다
누군가에게 예의 없게 대한 적도 없고
늘 먼저 다가가고 친절하려 애썼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했다.
무심한 적은 있어도 무시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가끔 미움을 받았다.
다이나믹한 시간의 파도 끝에 그 원인을 밝혀내면
그 안엔 꼭 '질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 사람이 나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느끼기 보다 그냥 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람들은 내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못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못하는 사소한 것 몇개와
나의 단점, 그리고 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설정을 말해준다.
내 가족 이야기를 먼저 오픈 하는 것도 어찌보면 전략이다.
나에게 뭐라도 아픔이 있고 부실함이 있어야 사람들은 안심한다.
그래야 균형과 레벨이 맞는다고 여긴다.
나는 늘 내가 눈치가 없고 솔직하다고 말하는 편인데
그렇게 해야 내가 때로 저지르는 실수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승화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무엇이든 편하게 말할 수 있다.
특히 일부 여자들끼리는 가식떨고 위선적으로 살며
속을 결코 보여주지 않는 것이 '똑똑함'이라는 불문율이 있는데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자기들 속을 들여다봤자, 얻을 것도 없는
온갖 시기, 질투, 허영, 게으름, 멍청함 뿐인데
대단한 숭고한 가치를 숨기기라도 했다는 듯
자기는 그런 것들을 잘 숨기고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듯 자뻑에 빠져 있는데,
그러한 점들이 이미 내 눈에 보이고 수가 읽히기 때문에
도무지 그들만의 리그에 내가 즐거이 맞장구쳐주고 동조할 수 없는 것이다.
솔직함을 교류하고 진실성만을 가지고도 유지되는 인간관계의 세계가 있는데
그녀들은 절대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를 뿐더러
우습게 여기기나 할 것이라 생각하니 한심 또 한심.
사람들은 타인의 장점에 인색하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면 자신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타인이 장점을 가지고 있아도 보지 않으려고 하고
결코 인정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입밖으로 그 사실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타인의 장점을 먼저 발견하고 인정하고 그 사실을 입밖에 내어 당사자의 귀에 들려줘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 사람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의 심복(?)이 되는 경험이 가끔 생길 정도로
너무나도 기분좋은 긍정적인 경험이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칭찬과 인정을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앞서 말했듯, 서로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주고 타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칭찬을 해준다?
그 사건은 그 사람의 일상에서, 그 사람의 인생에서 충격적인 사건
혹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칭찬으로 인해 그 사람의 인생 대운이 변화하는 것을
두번이나 봤다.
그리고 내 인생 역시 어떤 선생님의 사소한 칭찬 덕분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칭찬이 난무하는 사회에서는
내 칭찬이 타인의 칭찬에 묻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타인을 칭찬하지 않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럴 때 내가 느낀 타인의 장점을 그냥 담담하게 말해주는 것,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 행복한 경험,
당분간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이정표,
인생의 항로를 결정하는 새로운 태양빛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나는 사람을 속단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랜 노력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에게 사람보는 눈이 생겼다고 믿으며
처음보는 사람을 몇분안에 파악하고
유형을 분류한 후 '다 알았다'고 자부한다.
사람을 잘 볼 줄 알게 된 자기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그에 따라 이제 대처방법을 다 알았기에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이 하나 있다.
당신들이 뭘 어쩌건 당신들은 상처받게 되어있으며
당신들이 어떻게 판단하건
당신들의 대처 방법은 늘 같다.
사람 파악 -> 판단 -> 대처방법 발휘 -> 상처받지 않는 나
이런 논리구조가 언뜻 합리적이고 안전한 듯 보이지만
거의 모든 사람의 대처방법은 다 같다고.
자기자신을 잘 보여주지 않고 간보고 요리보고 뜯어보고 손해보지 않으려고 살살 내빼는 것
그게 천편일률적인 대처방법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떻게든 사람들로부터 상처받는다.
나에게도 첫인상이라는 것이 있고
낌새와 느낌이 있지만
첫인상이 항상 맞는 것도 아니고
낌새와 느낌은 일시적인 것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더더욱
나는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으려 애쓰고
부정적 정서로 와닿는 부분들은 단편적인 '오해'일 것이라 여기려 노력한다.
그 때 그 자리, 그 시간에서의 단편적인 모습을
그 사람 전체라고 속단하는 부류들치고
정말 좋은 사람을 못봤다. ㅠㅠ
사람 피곤하게 하고 예민하고 늘 자기본위의 논리만 펼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자신들인 것을 알까
사람의 성향과 마음은 가변적이고 또 패턴적이다.
하지만 패턴도 가변적이다.
고정된 것은 없는데.
궁극적으로
겉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모습의 저 사람 안에
좋은 본체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판단 보류.
나쁜 점 한두개,
이상한 반응 여러개,
왜 그러지 싶은 경우 몇 번이 반복되어도
그 사람을 나쁜 사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 속단하지 않고
그저 한결같이 잘해주는 것
좋은 것을 깔아두면
손해는 있을 지언정
피해는 없다
자, 이제 진짜 이 글을 쓴 이유
이렇게 나름 고민하며 살아오는 나를
'넌 투명해서 너무 쉽다'라고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었다.
너 역시 우스워
그 이유는 굳이 적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