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능력 중 가장 중요한 능력을 꼽으라면 바로 ‘말하기’ 능력이 아닐까 싶다. 말하기 능력이야말로 사람을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핵심적인 능력이다. 만 24개월 무렵이 되면 대다수 아이들의 말문이 트인다. 빠른 아이들은 만 18개월에도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늦은 아이들도 만 24개월이 되면 몇 가지 단어를 조합시켜서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겪게 되는 드라마틱한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울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사표현을 울음이 아닌 언어를 통해 할 수 있게 된 아기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 좀 더 사람에 가까워진 모습이 된다. 타인과 좀 더 ‘주고받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불쾌하거나 신경질이 나는 상황에서 발사되던 울음은 점점 사라지거나 짧아지게 되고, 왜 우는지에 대해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아이의 울음은 점점 ‘떼를 쓰는 상황’에 한정되어 ‘사용’되기 시작한다.
빠른 아이들은 만 24개월 정도 되면 대소변 가리기를 시작하거나 완성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부모의 잔손이 덜가는 상태가 되고, 부모들은 아이 키우기의 편함을 느끼면서 슬슬 둘째 계획을 세우게 된다. 물론 아이가 커가면서 ‘아기 돌보기’식의 육아는 점점 편해지지만 ‘훈육’과 ‘교육’에 대한 영역은 점점 더 난이도를 높여나간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다만, 엄마가 아이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돌봐야 되지 않아도 되는 두손의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일 뿐이다.
준이는 만 24개월까지는 짧은 전보식 단어를 사용하다가 26개월이 되자 갑자기 통문장형의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현재형, 과거형, 때로는 존대말같은 언어들이 마구 뒤섞여 나왔다. 준이가 처음으로 문장형으로 내뱉은 말은 애석하게도 “엄마가 혼냈어”였다. 하필이면 아이는 왜 내가 혼을 냈을 때 문장형의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한 것인지, 미안하고 안쓰럽기 그지 없었다. 너무나도 정확한 발음으로 ‘엄마가 혼냈어’라고 말했기에, 나는 지금까지 그 상황과 대사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밖에 없다. 아마 평생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아이가 말을 뱉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모는 아이의 입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오늘은 또 무슨 새로운 단어가 저 입에서 튀어나올까 기대하며 그날 뱉은 단어나 문장들을 육아일기에 기록해두기도 한다. 하루종일 아이과 집에 같이 있던 나는 그날 하루동안 아이가 새롭게 사용하게 된 말들을 기억해두었다가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속사포로 ‘보고(?)’하며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곤 했다. 그러다가 아이의 언어가 폭발적으로 확장되어 모국어의 구사력이 급상승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아 이젠 아이가 우리 말을 다 하는구나’하는 순간이 온다. 아이가 한 새로운 말이나 단어를 기억하는 것이 의미가 없게 된다. 아이는 이제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저 아이과 함께 대화하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
말을 하고, 덜 울고, 교감하고, ‘주고 받음’이 가능해진 아이와의 생활은 고통보다는 즐거움이 컸다. 아이가 처음 문장을 말한 후부터 약 한 달여간만큼이 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놓치기 싫은 순간들이었고, 모성애가 증폭되는 시기였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커지는 시기여서 아이를 혼내거나 다그치는 횟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사랑을 듬뿍 먹고 자란 아이는 또 그만큼 재롱과 애교로 내 사랑을 되갚아주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만 두돌까지 키운 아이는 말도 터지고 사람구실도 어느정도 시작하기에 어린이집에 보내 사회성을 기르도록 훈련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이 아이를 집에서 두고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매 순간순간이 너무나 놓치기 싫어서 두 눈에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더 담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자유는 그렇게 급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와 같이 있으면 빼앗기기 쉬운 자유이지만 아이와 함께 있어도 그 전만큼 자유가 시급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엄마도, 아이도 서로에게 적응이 많이 되었기에 아이와 같이 있는다고 해서 답답하고 힘들진 않았다. 대화상대가 없어서 괴로웠던 감정은 이제 아이와 대화하면 되니까 한결 나아졌고, 24시간 아이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던 감시 레이더도 느슨해졌다. 아이는 혼자 노는 시간도 꽤 많았기에, 잠시 혼자 놀게 해두고 내 볼일을 잠깐씩 볼 수 있었다. 필요하면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해도 아이가 크게 말썽을 부리지 않아서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아이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 혼자만의 자유를 찾아 튕겨나가던 내 모습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오히려 나의 일부가 된 아이를 나와 떨어뜨려서 어딘가에 맡겨야만 할 미래가 걱정되고 불안할 뿐이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건 아이 뿐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도 아이와 떨어지기 싫었다.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방해를 하고 저지레를 했던 아이는 이제 상황을 살피고 나와 조율을 맞추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내 인생의 간섭꾼이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의 일원이 되어갔다.
준이 또래의 주변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거나 엄마가 워킹맘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아이들은 주중에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해서 차곡차곡 엄마적자를 쌓아놓다가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 엄마이자를 내놓으라고 폭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하게 요구하고, 과하게 행동하고, 과하게 흥분상태이거나, 과하게 관심을 요구하는 등 아이와 함께 있으면 소위 ‘애가 너무 힘들게 한다’는 하소연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24시간 365일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는 엄마 적자 상태가 없다 보니 엄마 채무도 없다.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는 안정된 정서를 가지고 있고, 진정된 행동양상을 보이며, 엄마에게 관심을 내놓으라고 다그치기보다 스스로 엄마를 벗어나서 혼자 해보려는 행동을 시도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보여준다. 엄마는 항상 자신과 함께 있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 든든함으로 보다 독립적인 시도를 많이 해보는 것이다.
준이가 두돌부터 세돌까지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친구들은 하루가 머다하고 애보는게 너무 힘들다고, 주말이 제일 무섭다며 벌벌 떨었지만 나는 오히려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편하고 힘들지 않다고 이야기해왔던 것이 기억난다. 아이에게도 적응력과 눈치란 것이 있기 때문에 지가 갓난아기때 했던 행동을 커서도 계속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전업맘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면,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엄마인 나에게 적응을 해나가고, 의지도 하는 ‘내 자식’이 되어가는 모습을 온전히 지켜보는 행복을 기대해도 좋다. 갓난쟁이 시절에 날 소모시키던 그 아이는 2년만 지나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