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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Sep 20. 2017

순간순간이 소중한 내 아이와의 값진 시간

전업맘 생활을 계속 하다보면 아이와 빈둥거릴 때 문득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순간순간 소중한 내 아이와의 시간을 눈에 담고 또 담다가, 이대로 정지시켜버리고 싶을 만큼 행복감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급할 것이 없다. 아이는 나에게 조급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엄마나 주부로서의 엄청난 퍼포먼스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옆에 있어줄 것만을 기대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결과물을 만들고, 성과를 채근 당했던 학창시절이나 직장생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프레임의 삶이다. 끼니때마다 다른 반찬을 내오라고 핀잔주지도 않는다. 방이 더럽다고 청소하라고 지시하지도 않는다. 같이 모래범벅이 될 지언정 함께 뒹굴고 놀자고 만 손짓하는 해맑은 존재일 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이 있을 우리 아이인데,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라 할 지언정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관찰하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육아서를 통해 아동의 성장발달 과정을 훑어보고 머릿속에 넣는 것보다 직접 아이의 순간의 모습을 내 눈에 담고 가슴에 넣어두는 것이 더 값진 경험적 지식이 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의 첫 순간들은 미리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첫 뒤집기, 첫 배밀이, 첫 걸음마, 첫 저지레.. 눈물 콧물 쏙 빼는 감동의 그 첫 순간들은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그렇기에 아이를 두 눈으로 계속 지켜봐야만 포착할 수 있는 찰나이다. 그 찰나의 순간들은 아이와 하루종일 같이 있는 전업맘들에게도 쉽게 허락되는 것들이 아닐 수 있다. 나는 운 좋게 준이의 첫 뒤집기와 첫 배밀이 순간을 함께 했지만 첫 걸음마의 순간을 함께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첫 저지레의 순간도 같이 해주지 못했다. 아이들의 저지레는 항상 엄마의 눈을 피해 자행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업맘 생활이 행복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이의 첫 순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통해 내 아이의 발달 과정을 전해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의 손에 내 아이를 맡기며 내 아이의 컨디션이나 특성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있다. 활달한 아이, 잘 다치는 아이, 산만한 아이는 그저 그 아이들의 특성일 뿐인데도 괜스레 남의 손에 맡길 때에는 '단점'이 되고야 만다. 아이가 아파서 짜증이 많아진 것을 두고 엄마라면 불쌍히 여겨 극진히 보살필 일임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맡길 때에는 죄송한 일이 되고 만다. 


엄마와 아이의 교감의 폭이 넓고 깊어지면 엄마 뿐 아니라 아이도 엄마에게 맞춰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가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그 작은 꼬물이들에게도 이렇게 깊은 속이 있고, 행동력이 있고 실천의지가 있다. 그런 아이의 모습과 생각이 이제 내 눈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전업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능력들 중 하나다. 오래 같이 있고 자주 보다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다. 


 전업맘으로서 아이에게 가장 쉽게, 가장 크게 잘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듣는 다면 단연 대답은 '시간'일 것이다. 나의 시간을 모두 아이에게 기꺼이 양보하고 아이와 추억을 공유하는 것, 공유된 추억을 아이와 자주 꺼내보며 서로의 사랑을 공고히 다지는 것이 최근 우리 가족에게 생겨난 새로운 대화의 패턴이다. 겨우 6세밖에 안된 아이이지만 어렸을 때 이야기를 자주 해주면 그렇게 행복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전부 엄마가 알고 있고, 자신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감격해하는 것 같다. 그런 존재가 바로 엄마밖에 없다는 사실에 더욱 더 엄마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며 마음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과거 모습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어른과 마찬가지다. 나도 내 어린 시절 어떤 일이 벌어졌고,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이야기했는지 궁금할 때면 친정엄마에게 자주 묻곤 한다. 잘했던 추억보다 실수를 했거나 사고를 쳤던 추억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추억을 엄마로부터 꺼내어 보면서 내가 성장했음을 느끼고 내 안에서 나만의 역사를 써내려 간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기억해주고 있는 유일한 존재인 엄마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엄마가 없으면 나의 어린 시절의 존재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내 어린 시절의 유일한 증인은 엄마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이의 모습을 두 눈에 담고 가슴에 넣고,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한다. 아이가 물어 볼 때면 언제든지 꺼내어 줄 수 있는 형태로 재가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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