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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Oct 10. 2017

전업맘 아이는 얼마나 잘 커야 할까?

내가 전업맘이 된 이유는 단 하나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아이를 잘 키운다는 개념 안에는 무수히 많은 서브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고, 각 가치들은 다분히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잣대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많아 엄마들을 힘들게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그저 건강하게 키우는 게 지상최대의 목표였다. 여느 엄마들이 다 그렇듯 개월 수에 따른 정상키와 몸무게 표를 거의 끼고 살면서 수시로 체크를 하고 살았다. 아이를 크게 키우는 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남의 집 애들과 비교를 하는 지표도 오로지 애 몸무게와 키였다. 부가적으로 밤잠을 몇 시간 내리자는 지에 대한 비교가 은근한 경쟁거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끼고 있으면서 애를 잘 못 먹여서 애가 안큰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렇게 속이 상할 수가 없었다. 준이는 심하게 마른 체형이라 나는 아직까지도 집에 있으면서 애도 잘 먹이지 못하고 뭐하냐는 소리를 듣고 산다.


아기가 걷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이의 말문이 언제 터지나, 얼마나 말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가가 관심거리다. 나는 분명히 언어적 자극을 많이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집 애의 말이 더디거나 표현력이 떨어질 때, 많은 전업맘들이 자책감을 느낀다. 전업맘만의 특권인 상호교감과 언어자극에서 낙제점을 받기라도 했다는 듯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아이의 언어발달이 늦을 경우 합리화 및 위안거리를 찾기 위해 가족력을 뒤져보기도 하고 성별의 특성이라고 이해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의 탓이 아니다. 말이 빠른 아이들이 언어자극을 더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듯이 말이 느린 아이들 역시 언어자극을 덜 받거나 엄마가 잘 못 키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간에도 발달속도는 제각각일 수 있다. 아이만의 고유한 성장시계의 작동결과일 뿐이다.


말도 터지고 신체발달도 어느 정도 완료된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훈육문제가 항상 골칫거리다. 아이의 자기중심적인 성향은 왜 그렇게도 센지 말도 안 듣고 너무 못된 것 같이 느껴져 내속으로 낳은 아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업맘으로서 아이와 이렇게나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이와 있으면 왜 항상 화가 날까. 이 아이는 대체 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무력감마저 든다. 차라리 밖에 나가 돈이라도 벌고 안보고 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떤 엄마는 아이가 자신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엉망이고 어린이집이나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얌전하고 모범적이라며 '내가 문제인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아이들의 알 수 없는 반항심과 엄마를 무시하는 태도 때문에 많은 전업맘들이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아이의 반항기에는 끝이 있다. 5세에 반짝하고 찾아오는 착한아이 모드, 7세에 시작되는 사회화된 인간모드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본격적인 학습모드가 시작되면 전업맘들의 자괴감은 극에 달한다. 바로 그놈의 한글떼기와 숫자세기 때문이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서 왜 애 한글교육도 제대로 못시키냐는 소리를 듣기는 죽기보다 싫지만 아이는 내 말을 잘 따라주지 않는다. ㄱ,ㄴ,ㄷ을 직접 가르쳐보려고 타이르고 애를 써도 아이는 방금 가르쳐줬던 것들을 순식간에 잊거나 아예 내 말을 듣지 조차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 부랴부랴 학습지를 알아보고 공부방을 알아보고 교재나 교구를 알아보게 된다. 나는 죽는다고 열심인데 가족과 지인들은 할때되면 한다고 놔두라거나 굳이 왜 돈을 들여야 되냐고 속도 모르는 소리를 해댄다. 전업맘이라고 해서 일을 안하고 집에 있다는 것 외에 내가 무슨 아동 특수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데 아이의 성장단계에 따라 나에게 주어지는 난관과 과제들은 한없이 높고 어렵기만 하다.


한글과의 싸움에서 한시름 놓은 엄마 앞에 놓인 부담감의 끝판왕은 바로 영어다. 영어를 가르쳐야하는 시기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떻게 가르쳐야 되느냐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일치한다. 집에서 엄마표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엄마일수록 말로 표현 못할 중압감과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 반면 아이의 영어교육이 늦었다고 생각될수록 아이는 엄마표보다는 학원에 보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라면 영어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틀어주고 영어동영상도 보여주는 등 유아적인 접근방법을 동원해볼 수 있겠지만 학교에 들어가서 유치한 것을 싫어하게 된 아이들에게는 조금 더 학문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가 늦었다고 생각될수록 내가 집에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는 그동안 뭐했나라는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집에 있으면서 애가 어릴 때 뭐라도 좀 더 해줄걸, 뭐라도 좀 더 사서 들려줄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시길. 어린 아이나 조금 더 큰 아이나 모두 영어에 적응하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며, 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스펀지처럼 영어를 잘 받아들일 것이다. 10 세 이전에만 시작한다면 늦지 않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엄마들 모임에서 엄마들이 아이 교육에 대해 입을 닫는다. 공부 잘하는 집 엄마들은 함부로 자랑을 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닫고, 아이 성적이 안 좋은 아이의 엄마는 또 그 나름의 이유로 입을 닫는다. 이때 전업맘의 자식이면 학교공부에서 조금은 더 우위를 점할 것이 아니냐는 편견이 전업맘을 가장 힘들게 한다. 허나 애석하게도 아이는 기계도 아니고 식물도 아니다. 매뉴얼대로 자라주지도 않고 들인 노력에 정비례해서 자라주지도 않는다. 이때부터는 엄마들이 아이와 자신의 행복감이라는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며 살았으면 한다.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은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 중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엄마의 역할과 책임이 아이를 객관적 지표 상 우수하게 키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즐겼으면 좋겠다.

행복감을 가진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줄 알고 함부로 남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엄마인 나를 사랑해줄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우기보다 아이와 함께 잘 사는 나만의  방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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