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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Jan 13. 2019

워킹맘 아이의 통과의례, 요리

워킹맘의 아이들은 적어도 요리를 못하지 않는다. 엄마 없는 시간에 스스로 밥을 챙겨먹고 뒷처리까지 끝내놓아야 하는 생활을 적어도 10년 이상은 해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텔조리학과나 요리계열의 진로를 걷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해서 이 진로를 선택하게 되었냐'고 물으면,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요리를 접하게 되었다는 대답이 절반을 넘어선다. 사실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고등학교의 숫자도 적지 않은데, 어떻게 중학생들이 '요리'에 관심을 가지거나 재능을 발견할 수 있겠나. 가정환경 속에서 요리에 적잖이 노출이 되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스무살이 넘어 타지역으로 대학을 갈 때, 자취를 하면서 요리라는 카테고리를 처음 생활로 접하게 된다. 하지만 워킹맘의 아이들은 빠르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밥을 차려 먹는 생활이 시작된다. 빨래나 청소는 미뤄두었다가 엄마에게 떠넘길 수 있지만, 당장 배가 고픈 아이들은 엄마가 돌아오기까지 배고픔을 기다릴 여유도, 이유도 없다 .


때문에 워킹맘의 아이는 대게 요리를 곧잘한다. 엄마보다 잘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워킹맘은 30년 엄마생활을 하면서도 요리가 전혀 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아이들은 요리가 점점 는다. 아무래도 아이들이어서 잘 배우고, 실력이 금새 늘어서일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요리에 노출되고, 또 그러면서 요리에 자신감이 붙고, 한편으로 공부가 싫다면 99%의 확률로 아이는 요리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싶어한다. 그저 우연히 남들보다 일찍 숙달된 생활기술일 뿐인 요리를, 자신의 재능이나 적성이라고 믿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요리를 진로로 택하는 아이들에게 있어, 요리가 진짜 재능일지,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 의해 숙달된 기능인지를 구분짓는 것은 쓸데없는 노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부모들이 아이가 요리를 진로로 정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기에,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이도 요리를 좋아하고, 부모도 아이의 진로를 달갑게 여겨준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아이는 요리를 하겠다고 우기고, 부모는 아이를 내쫓기라도 할 듯 반대한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우선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아이가 다른 집 아이처럼 아이답게 컸다면, 손에 물 한방울 안묻히고 자랐다면 과연 아이가 요리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할 기회가 있었을까?


도드라지는 재능이 전혀 없는데, 환경의 도움으로 아이가 요리라도 잘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대다수의 부모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날까지 아이가 공부에만 전념하길 바란다. 아이가 공부에만 전념하길 바란다면, 아이가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 만들어주어야 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 역시 요리에 도가 튼 사람이다. 굳이 직업적으로 요리를 파고 들진 않았지만, 모든 요리의 조리가 이루어지고 맛이 나는 매커니즘을 간파하고 있기에, 어떤 요리든 레시피를 슬쩍 보면 대충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내 동생도, 사촌동생도, 다른 워킹맘의 자녀 사촌들도 다 마찬가지다. 워킹맘의 아이들에게 요리란 언제든 뻗어 잡을 수 있는 차선책 같은 진로다. 물론 요리로 성공하는 여러 쉐프들과 요리연구가들이 있지만, 매일 출퇴근하는 직업 요리사의 세계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요리연구가들의 삶은 극명하게 다르기에, 아이들이 화려한 겉모습이나 환상만을 보고 덜컥 요리라는 진로를 함부로 택하지 않도록 부모가 중심을 잘 잡아줄 필요가 있다. 그 전에 앞서, 환경을 잘 만들어주는 일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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