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빠진 머리에 채워지는 지혜

by 스윗제니

30살이 넘고 아이를 낳으니, 뇌를 함께 낳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뇌의 기능이 떨어진다. 20대에는 거뜬히 했던 쉬운 공부들을 되짚어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 지끈거릴만큼 어렵다. 그저 이렇게 퇴화해 가야 하는 걸까.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어른이 된 후 계속 그 자리에 경험만을 되쌓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헌데 아이를 낳고 키우니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살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 전엔 전혀 몰랐거나,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세상의 이치와 지혜에 조금씩 접근해가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이와 함께 전래동화를 읽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많은 관점이 존재했나를 깨닫게 되고,

아이에게 역사동화를 읽어주며 선조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너무나도 꼭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선현들이 남겼던, 어려서는 뻔하디 뻔한 도덕적인 이야기라고만 느꼈던 한구절한구절들이 세상의 모든 진리와 지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전율하게 된다.


2000년 전 살았던 사람들과 우리는 눈꼽만큼 다르고 대부분이 같은 삶을 살았다.

어떤 점이 같느냐면 그 스토리가 같다.

어떤 점이 다르냐면 보고 만지는 물건들의 이름만 다르다.


나는 너무나 지혜로워져간다.

남들보다 지혜로워졌다기 보다 과거의 나보다 그렇다.


세상에 착한사람과 나쁜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세상 착한 사람이고,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피해자이고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이다.


그래서 나는 매사에 조심하며 살게 된다.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주지 않게.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지 않게.



모두에게는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입장차이는 관계 속에서 본의 아니게 폭력성을 생성한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입장과 처신을 선택적으로 취하며 세상에 둘도 없는 피해자가 되어간다.


과거 성과중심의 세계에서 살던 나는

나 자신을 기능적인 인간으로 규정했고, 생산성을 주요 가치로 여기는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을 영위하며, 그것이 세상사는 이치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자연인이 된 후 사회적 기능이 필요없게 된 내가 생산성과 무관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인간이라는 본질에 대해 더 다가가게 된다.


원래 인간은 분쟁적이고

원개 인간은 자기본위적이고

원래 인간은 저열하고 비겁한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조직생활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고

사회생활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습성이 원래 그렇고,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5000년전 부족주의 사회에서도 그랬다.

1000년전 유교적 사회에서도 그랬고

2000년전 불교사회에서도 그랬다.


그러니 공자나 맹자가 읊었던 별 것 아닌 것 같은 한줄한줄에 울림이 있는 것이다

중국이어서 달랐던 것이 아니고

한국이라 이런 것이 아니다.

옛날 사람들이 사는 삶과 현대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똑같다.


그리고 그들은 해답을 내놓는다.


나 자신으로 살라고.


이미 수천년 전에 답이 나왔는데.

현대의 사상가나 철학자들이. 수필가들이, 박사님들이 하는 나 자신으로 살라는 말에 더 열광하고 호응할 필요가 있는가.

연구실에서 논문으로 검증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문장이

싯다르타가 했던 나 자신으로 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고전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다.

공자, 맹자는 우리 사회에 제사란 망령과 비합리적인 가부장적 기틀을 물려준 절대악인이 아니다.


실험실, 연구실, 통계프로그램 없이도 인생의 지혜를 미리 깨닫고 열심히 책으로 남겨준 분들이 계신데.

우리는 어디서부터 방황하고 어디로 가려는 걸까.


경력이 단절되고 손과 뇌가 퇴화하기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대신 나에게는 무수한 시간이 생겼고, 사색하고 사고하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돈을 벌지는 못하는 지혜건만 나는 거듭 지혜로워지고 있다.

쓸데 없고 고민만 만드는 지혜인줄 알았건만 나는 점점 지혜로워지는 나 자신이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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