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와 달리 미국에 제재 받지않는 이유
최근 전 세계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자동차뿐만 아니라 가격이 오른 제품군이 또 있습니다. 바로 노트북인데요, 대만에서 가뭄으로 반도체 공급이 어려워지니 고객사인 레노보, HP, 델, 에수스 등 세계 노트북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비상에 걸린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비트코인 채굴과 재택근무의 연장으로 수요가 전년대비 80% 늘었다고 하니 앞으로의 노트북 품귀현상은 계속될 거라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이 노트북, 정확히 말해서 노트북 PC를 여러분들은 다들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저는 대학교 입학 당시 구매한 LG 그램을 중간에 부품만 갈고 계속 사용 중입니다. 별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노트북을 보면 굉장히 다양합니다. 게임에 특화된 게이밍 노트북, 가볍기로 소문난 슬림형 노트북들, 중저가의 조립형 노트북 등 우리의 삶에서 이제는 무거운 데스크톱보다 노트북이 차지하는 부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래 Stretegy Analytics 컨설팅사의 노트북 PC 판매표를 보겠습니다. 표에 따르면, 각 제조사들의 평균 판매 성장률이 전년대비 80% 이상이며 금년도 1분기의 경우 레노버 사의 노트북이 판매 1위를 차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흠... 그렇군요, 그저 내 낡은 노트북을 얼른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레노버에 대해서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중국 유학 전까지만 해도 레노버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국내 노트북 제조사인 LG나 삼성, 혹은 대만의 Asus, 미국의 HP, mac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 또한 자세히는 모르고 그저 전자제품 매장에서 추천해주는 일반적인 대학생들이 쓰는 노트북만 구매해봤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가서 처음 레노버를 마주쳤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레노버 노트북과 핸드폰을 써서 알아봤던 기억이 납니다.
해외에서 더 저명하긴 하지만, 국내에서도 엔지니어분들이 굉장히 선호하는 노트북 제조사라고 들었습니다. 씽크패드로 굉장히 유명하죠.
중국에서는 联想 [liánxiǎng] 즉, '연상'이라는 브랜드로 경영되고 있습니다. 아마 주력제품인 Think Pad에서 이 이름을 따온 것이 아닌가 나름 추측해 봅니다.
레노버는 중국 기업입니다. 그렇지만, 중국 기반의 다국적 기업입니다. 이 점이 미국에서의 레노버 경영환경에 굉장한 이점이 됩니다.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걸쳐 현재의 조 바이든 행정부까지 미국 진출 중국기업에 대한 활동 제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5G 기술 기반의 화웨이와 ZTE의 미국 시장 퇴출, 또 얼마 전 미국 나스닥 상장을 노리던 디디추싱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경고까지 이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레노버는 미국에서의 판매량 1위를 몇 번이나 했을 정도로 순조롭게 승승장구하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듯합니다.
왜 미국 정부는 레노버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걸까요?
그 해답은 레노버의 발전 역사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레노버는 1984년 중국과학원 IT연구소의 투자를 받아 11명의 직원들로 설립된 IT 대기업입니다. 설립자는 류찬즈(柳传志)로 지금은 은퇴하여 실직적인 경영권은 2001년 현 회장인 양위엔칭(杨元庆)에게 넘어갔습니다. 설립 초기 중국 정부의 투자를 받아 성장한 것이니 여느 중국기업들처럼 국영기업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04년 이전까지 레노버의 주요 판매시장은 국내에만 머물렀고, 세계적인 인식도는 거진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그리고 2005년 중국 PC산업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인수합병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전 세계 3대 PC 시장을 잡고 있던 IBM의 PC 부문을 약 12억 달러에 인수 합병하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지금의 레노버가 탄생한 시점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차이나머니의 공격적인 인수합병 성격을 아주 잘 나타내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그럼 IBM은 잘 나가는 PC사업을 왜 중국의 레노버라는 회사에 팔게 된 걸까요?
그건 양측의 수요공급이 아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IBM은 하드웨어보단 소프트웨어 측면의 컴퓨팅 서비스, CPU, 반도체 등 더욱 첨단 IT기술 부문을 회사의 핵심 사업으로 키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Dell이나 HP에 비하면 지지부진하여 눈엣가시이던 비핵심 사업인 PC사업을 팔아버려 더 높은 이익을 내는 핵심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자 했습니다. 그럼 레노버는 왜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는 IBM의 PC사업을 과감하게 집어삼켰는지 궁금해집니다. 판매시장 확대가 목적이었습니다. 2000년 초반, 중국 국내에는 Dell과 같은 외국 PC 제조사들이 들어와서 레노버의 판매실적은 그야말로 최악의 수준까지 가게 됩니다. 다른 사업에까지 손을 뻗쳐보지만 결국 다 실패해서 PC사업만 바라보게 되죠. 이렇게 포화된 국내 시장에서 지금의 레노버로는 피나는 가격경쟁 밖에 할 수 없었기에, 국내 시장을 탈출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노버의 해외 수입은 3%조차 안되었다고 하니, 정말이지 목숨을 건 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레노버는 IBM의 PC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과 위치를 얻을 수 있었고, 인수합병의 최대 장점인 선진국의 첨단기술과 연구개발 또한 흡수했습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2005년 초반 일어난 센세이셔널한 경영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히고 그 성공 스토리를 높이 산다고 합니다. 제가 봐도 가장 중국스러운 성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흠... 아직도 레노버의 중국 성격이 더 강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럼 미국이 퇴출한 화웨이의 경영 전략과 비교해서 다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두 기업 모두 다국적 기업임을 주장하며 해외 수입의 다양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큰 틀은 같은 것 같습니다.
먼저,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의 공급사가 차이납니다. 화웨이는 몇 년 전부터 자사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의 국내화를 진행해왔습니다. 모든 부품을 중국 협력업체로 돌리고 기존의 해외 제조부품을 다 대체했습니다. 그러나 레노버는 항상 미국에서 시작한 IBM을 계승한다는 정신을 항상 세계시장에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또, 가장 관건으로 볼 수 있는 레노버와 IBM의 양자 간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계약입니다. 인수합병 당시 미국 IBM과의 라이센싱 계약에 제조 프로세스가 제한되고 있어 미국 입장에서는 더 투명해 보이는 것이죠.
다음으로, 화웨이와 레노버의 주요 판매 제품이 구분됩니다. 화웨이는 미국 시장 진출 당시 5G 기술, 스마트폰 OS 등 미국 보안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소프트웨어를 팔고자 했습니다. 워낙 몸집이 큰 회사라 자칫하면 그 힘을 막을 수 없고 제재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미국 정부는 판단합니다. 레노버는 IBM과의 엄격한 라이센싱 계약을 유지하고 하며 미국에서 PC 제조/판매를 하니 제재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서의 중국기업 활동에 엄청난 제재를 가해왔습니다. 또 레노버 역시 제2의 화웨이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이에 현 레노버 회장인 양위엔칭은 "레노버의 다국적 기업 성격을 내세우며 실제로도 대부분의 자사 제품 제조가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레노버는 미국의 적이 아니다." 며 강력주장합니다.
지금도 레노버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본사에서 만들어지는 PC 제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주력 판매시장 또한 해외 수입이 국내 수입을 월등하게 뛰어넘은 지 오래입니다. 레노버가 주장하는 "Made in USA" 타이틀은 확실히 구매자들에게 매력적이고 운송기간도 짧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의 활동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아이폰 구매자들은 패키징 박스에 쓰여 있는 구문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굉장히 센세이셔널 한 문장이죠.
"iphone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애플 사의 아이폰은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되고 중국에서 조립되었습니다)"
이렇게 현대의 제조물품들은, 더군다나 고부가가치의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제품군으로 갈수록 특정 나라 제조임을 명시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신제품 발표 시 부품별로 제조사를 같이 기입하는 것은 이제는 당연한 절차가 되고 있습니다.
레노버 사의 씽크패드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국제화 시대임을 또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국내의, 또는 내 주변의 물품들이 정말 국내 제조가 맞았던 것인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국가의 물품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그 나라의 경제에만 타격이 가는 것인지도 고려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면 조금 더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더 깊게 이해하고, 기업과 기업 사이의 협력관계의 중요성도 더 와닿으실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