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로 보는 공자의 인생단계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눈오는 크리스마스 떠올리며 설레하고, 또 누군가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왜인지 모르게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지금가지 열심히 살아온 만큼 앞으로도 더욱 힘내야 한다니 괜시리 겁을 먹게 됩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무언가 가로막힌 기분이 들고 길을 잃었을 때 철학책을 보곤 합니다. 동서양 구분 없이 다양한 학자들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상상하면 뭔가 한 숨을 돌리게 됩니다. 제 고민들이 정말 하찮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평가한 철학자 중 저는 저와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께 공자의 논어·위정편《论语·为政》중 한 장을 같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공자의 말년을 알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비록 학창시절에는 한비자나 순자와 같이 상벌책을 중시하는 학자가 좋았는데 이제는 논어에 빠지는 것을 보니 저도 나이가 들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본론에 앞서 위정편《为政》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위정편은 총 2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내용은 공자의 덕치사상과 학자로서 자신과 제자들이 길러온 소양,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심오한 기술입니다.
그 중 이 글에서는 우리에게도 가장 친숙하고 실제로 동아시아 유교사상을 관통하는 '나이에 대한 공자의 평가'를 소개하겠습니다.
흔히 우리는 타인의 나이를 말할때 직접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불혹의 나이' 혹은 '지천명의 나이'와 같은 말을 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들어온 말이라 자칫 그 뜻을 모르고 관용어처럼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나이에 대한 표현들이 모두 공자가 한 말로 부터 시작된 것을 아시나요?
차근차근 공자가 왜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각 나이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는지 알아보는 좋은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자 왈 : "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을 깨우쳤으며, 서른 살에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마흔 살에는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으며, 오십 세에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늘의 뜻으로 달갑게 받아들였다. 또한 육십 세에는 온갖 이견들을 들을 수 있었고, 마침내 칠십 세가 되니 자유의 몸이 되어도 그 정도를 지키니라. "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学,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顺,七十从心所欲不逾矩。”《为政》
释:孔子说:我十五岁就立志学习,三十岁就能有所成就,四十岁遇到事情不再感到困惑,五十岁就知道哪些是不能为人力支配的事情而乐知天命,六十岁时能听得进各种不同的意见,七十岁可以随心所欲(收放自如)却又不超出规矩。
위의 구절을 자세히 해석해보면 실제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나이와 관련해서 쓰는 단어들과 그 의미가 다소 상이합니다.
그 이유는 공자의 인생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吾十五而志于学(지학)”
: 십오세에 배움에 뜻을 둔다는 의미. 스스로 뜻을 세우고 뜻을 이룬다. 일반적인 어린 아이는 칠세 즈음에 배움을 받지만, 학습의 목적이 불분명하고 무지하여 배움에 집중하지 못 한다. 어렸을 때 부터 분발하여 고학하는 아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성인이 된 공자 조차도 십오세 이전까지 배움에 집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三十而立(이립)"
: 삼십세가 되어서야 일을 해야겠다는 뜻이 생겼다는 의미. 즉,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먹고 살아야하는 고민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어떤 전문분야를 선택할지와 비슷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십세에 그 뜻을 펼쳤지만, 공자는 풍류를 좋아하여 늦은 나이에 학문에 전심했다. 그리고 삼십세가 되어서야 마침내 올바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고 한다.
“四十而不惑(불혹)”
: 삼십세에 올바른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과연 올바른 일이란 무슨 일인가? 오늘은 이걸 하고 싶고, 내일은 저것을 하고 싶은 것처럼 항상 갈팡질팡하며 모든 것을 의심한다. 불혹의 나이란, 사십세가 되어서야 갈등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제서야 "兴灭国,继绝世,举逸民,天下之民归心焉(멸국을 다시 흥하게 하고, 끊어진 대를 잇고, 그 백성들을 품는다면 결국 민심을 돌아올 것이다)"의 큰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 여기서의 불혹이란, 공자 스스로의 이상과 집념을 뜻한다. 마음 먹은 일을 의심하지 않고, 딴 맘 먹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일이나 어떠한 도리를 모두 믿겠다는 말이 아니다.
“五十而知天命(지천명)”
: 사십세에 목표를 정했고 오십세까지 승승장구하여 노나라에서 대사구(지금의 법무장관)로서 극기복례하였으나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했으니, 이것은 천명이니라.내가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 전심전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지천명의 나이란, 공자가 오십세가 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니 그제서야 이것이 하늘의 뜻임을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오십세에 하늘의 뜻을 예지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六十而耳顺(이순)”
: 좌절, 원망, 고통, 우롱, 비웃음, 심지어는 상갓집의 개라고 표현될 정도로 공자는 말년이 순탄치 못했습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좋지 않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은 이런 말들을 공자는 육십세까지 줄곧 들으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들어도 듣지 못한 것 처럼, 육십세에는 어떤 말을 들어도 감정의 동요가 이르지 않는다는 의미 입니다. 분노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은 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七十而随心所欲,不逾矩(종심)”
: 뜻을 이루지 않은 채, 공자는 《周易(주역)》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春秋(춘추)》를 다듬으며 칠십세가 되었다. 이때 공자의 심리수양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어떻든 도덕과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았다.
저는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현대인들은 태어나자마자 배우고 서른 이전에 스스로 독립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합니다.
공자는 말년에 길거리를 떠돌아 다녔으며, 사마천은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며 살아감. 비단 이들 뿐만 아니라 옛날 주나라의 문왕은 감옥에 갇혔을 때 주역을 만들었고, 손자는 다리가 끊기자 병법을 만들었으며 과학자 정약용은 흑산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해양생물학 사전을 저술.
공자는 살아가면서 학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총 세 단락을 나누었습니다.
십오 세부터 사십까지는 학습의 단계
오십부터 육십까지는 어떠한 환경에도 영향받지 않고 자아실현을 달성하는 단계
칠십세는 주관의식과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에 대한 조화를 이루는 단계
요 몇년동안 사람들은 심적으로 신체적으로 많이 지쳐있습니다. 특히 20-30세 들의 부담감은 전례 없을 정도 입니다. 은퇴를 앞둔 우리 부모님 세대들도 눈 앞이 막막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한 누군가의 인생을 보고 정말이지 내 인생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질 때가 많은 나날들 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 나이가 몇 인지 상관 없이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왔고, 지금 이 순간도 결국 미래의 행복에 밑바탕이 될 것 입니다. 세상에 무의미한 경험은 없고 소득 없는 상처는 없습니다.
그 누구보다 세상을 넓게 보는 성인들 조차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게 인생이였고 우리는 그것을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그저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 보다 더 낫길 바라며 사는 것이 인생의 미덕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인생을 마치기 전 주마등 처럼 자신의 인생이 눈 앞에 하나 하나 지나간다면, 저는 스스로의 일생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