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털한 남자

털이 많은 남자의 삶

by 신작가

나는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사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는 것만 봐도 다들 유추하고는 하지만, 나는 털이 정말 많다.

온몸 군데군데 털이 안 난 곳이 없다.


본격적으로 털이난 때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는데, 그때는 배정남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깔끔하게 다듬은 콧수염과 긴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는 나에게 엄청난 로망을 일으켰다.


중학교 1학년 때 작은 솜털이 콧수염에 자라기 시작을 하였는데, 그때는 그게 그냥 이 나이 먹으면 다들

생기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내 또래 친구들 중 나처럼 수염이 자란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 당시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 한 명은 1시간에 한 번씩 셀카를 찍고, 눈썹에 스크래치를 넣을 정도로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내게 자라는 수염이 특별한 무기라고 날 설득했고, 난 과감하게 솜털을 밀어버리고 거뭇거뭇한 수염을 맞이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름 거뭇거뭇한 수염에 그 당시 유행하던 울프컷 머리를 하고 나니 정말 배정남이 된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부터 발생했다.

콧수염을 지나 턱수염이 자라더니 군데군데 온몸에 미친 듯이 털이 자라기 시작했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새로운 털이 돋아나 있었다.

처음에는 그 털이 너무 적응이 안돼서 직접 하나둘씩 뽑아봤지만, 역부족인 것을 깨닫고 흐르는 대로 맡기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이 지나 성인이 되고 나서 여자인 친구들과 함께 워터파크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몸을 만들어서 남들보다 좀 다부진 몸매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당하게 상의를 탈의하고 밖에 나왔는데 그들의 경악스러워하는 반응은 나에게 작은 트라우마를 안겨줬던 것 같다.


그 후로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를 갈 때에는 꼭 래시가드를 챙겨가곤 했는데, 털을 완전히 깎지 않고, 적당히 정리만 해주는 도구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곧바로 매장에 가서 그걸 샀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세상에 이런 혁신적인 아이템이 있을 수 있다니.. 이 아이템은 내 20년 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주었다.

그 후로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를 가는 일이 있으면 꼭 털을 정리하고 가고는 했다.




이런 털털한 나에게 지금의 내 여자 친구는 털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인 듯하다.

한 번도 내게 왁싱을 하라고 강요한 적 없고, 오히려 자기는 제라드 버틀러를 좋아하는데 내 몸과 털이

제라드 버틀러와 같은 과라고 말해주었다.

아무렴 어떤가.. 내 털을 이해 해주면 그걸로 나는 감사할 뿐이다.

모범시민 제라드 버틀러 복근은..기본 장착인가..;;




털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요즘 어디 있겠냐만은.. 살다 보면 내 털도 좋아해 주는 여자가 당신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물론.. 그 털은 당신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나서 어느 정도 다부진 몸을 가졌을 때 얘기다.

아마 어떤 여자도 배 나오고 축 처진 남자의 가슴에 돋아나 있는 털들을 좋아할 여자들은 없을 것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털이 굵고 많은 이유는 그만큼 호르몬이 왕성하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가 먼 미래에 남성스러움을 어필할 수 없는 시대가 오면 그때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나는 남자야! 이 털이 그 증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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