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백신 접종기
결국, 맞았다. 많이 의심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맞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의 면역력을 믿고 싶었다.
평생 이런 거 맞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자가격리를 하지 않으려면 맞아야 된다는 소식에
결국 맞기로 결심했다.
NSW주에 하루에 1000명 넘는 사람이 감염되기 시작하면서, NSW주도 점차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락다운이 실행되고, 답답함을 못 이긴 사람들이 밖에 나와 시위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 회사 슈퍼바이저 토비가 때맞춰 백신 접종 예약을 우리를 위해 해 준다고 하길래 결국 가서 맞기로 했다.
락다운이 실행될 만큼 심각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은 너무나 맑았다. 도대체 이렇게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런 심각한 상황들이 잠시나마 중화된다.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소도시로 차를 몰고 갔다. 찬바람이 살살 부는 탓에 평소에 안 입던 카디건을 걸치고 길을 나섰다. 어제 일할 때 쓰던 마스크를 찝찝함을 참으며 인상 한번 찌푸리고 다시 한번 썼다.
주위에 도착하자마자 길게 늘어져있는 행렬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금방금방 줄이 빠지는 거 같아 참아보기로 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ID카드를 체크받고 바로 옆 칸으로 갔다.
바로 옆 플라스틱 하얀 의자에 사람들이 주사를 맞고 있었다. 그것도 외부에서..
내가 생각했던 병원 내부에서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지극히 형식적으로 주사를 넣는 그런 비주얼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마치 중국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대충 잘라주는 이발사들이 무심하게 머리를 잘라주는 그런 장면들이 연상되는 자리였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반가웠지만 얍삽 빠르게 먼저 와서 맞고 떠나 버리니 조금 서운했다.
그렇게 나는 결국 맞았다. 마치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 한 마리처럼 터벅터벅 들어가서 내 손으로 직접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다들 이렇게 맞으니까.
조금 씁쓸하지만 한국에서는 없어서 못 맞는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화이자 약품의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대량으로 버려버리는 호주의 상황과 비교를 하니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맞을 때는 전혀 통증이 없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어깨가 조금 욱신거리기 시작했고, 이상하게도 집에 올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설사가 나기 시작했다. 부작용인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일반적인 증상이라고 한다. 왠지 모를 피로함이 몰려온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평균 이상으로 건강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