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필사 #33
어떤 큰 사교 모임에서
방금 나온 학자가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모임의 수준과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모임이 만족스러웠나요?"
그가 제대로 답하지 못하자
한 사람이 이렇게 질문을 바꿨습니다.
"그 모임이 책이라면, 다시 읽겠습니까?"
그러자 바로 이런 답이 나왔죠.
"다시는 읽지 않겠소."
- 괴테 <사교>
"왜 세상은 내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걸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해온 일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때, 마음 깊이 서운함이 찾아오지요.
하지만 괴테는 말했습니다. "모든 질문이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이 명확하지 않으면, 세상의 대답도 흐릿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임을 책에 비유하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책을 잘 읽고 싶은 사람은 조용히 집중하고, 마음을 열고 질문을 품습니다. 그렇게 해야 책이 속삭이는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듯, 세상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더 가깝게 소통하고, 진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지혜롭게 질문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때는, 먼저 나의 질문을 돌아보세요. 지혜로운 답은, 늘 지혜로운 질문에서 시작되니까요.
아무리 오랫동안 질문해도
세상이 답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그가 아닌
내 질문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혜로운 답변은 언제나
지혜로운 질문에서 나옵니다.
- 김종원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김종원 작가의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를 읽고, 저는 75일 동안 이 책을 필사했습니다.
그 긴 여정 동안 마음 깊이 새긴 것은 하나였습니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방법은 언어이며, 그 언어는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한다"
지혜로운 언어를 쓰는 사람은 지혜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말이 곧 나의 세계를 만듭니다.
주변에 부정적인 말이 많다고 느껴질 때,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나 역시 부정적인 언어를 습관처럼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내 세계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만들어집니다. 예전에는 동창 모임, 학부모 모임, 계모임 등에 자주 참석했습니다. 그런 자리에는 늘 자랑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자녀 자랑, 남편 자랑, 돈 자랑, 명품 자랑, 애완동물과 손주까지. 자랑이 끝나면 자연스레 험담이 이어졌습니다.
그 속에서 나도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험담에 동조하며 공감대를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리를 다녀오고 나면 늘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나 자신을 소모시키고 온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그런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누군가를 칭찬하고 따뜻한 웃음을 건네는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웃고 칭찬하다 보니 나의 곁에도 자연스레 웃음과 칭찬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미소를 보고 싶다면 내가 먼저 웃어야 합니다.
칭찬을 듣고 싶다면 내가 먼저 칭찬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답을 얻고 싶다면 지혜로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내 언어는 곧 내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