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필사 77 (#229)
이편은 저편을 먹고살며
저편은 이편을 희생시켜 번영한다.
문화상의 모든 위대한 시대는
정치적으로 몰락의 시기다.
- 니체
우리나라 정치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편은 저편을 먹고살고, 저편은 이편의 희생 위에서 목소리를 높입니다. 상대가 잘못해야 자신이 두드러지기에, 정치인은 끊임없이 꼬투리를 잡고 흠집 내기에 몰두합니다. 정치가 몰락한 시기, 오히려 문화는 눈부시게 꽃 피웠습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활약하던 르네상스 시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예술의 황금기였습니다. 그 이면에는 정치적 혼란과 교회의 타락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교황청은 사치스러운 예술 후원을 위해 권력을 남용했고, 그 무게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세금과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화려한 문화의 배경에는 정치의 몰락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국을 문화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케이팝 데몬헌터스’의 열풍은 빌보드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국내 정치는 늘 불안정했습니다. 세대 갈등, 극심한 정당 대립, 청년들의 좌절감은 한국 정치의 병리 현상을 드러냅니다. 문화가 세계적 위상을 높이는 순간, 정치가 추락하는 아이러니가 드러난 것입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문화적 성취 뒤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습니다. 아이돌의 무대는 수많은 연습생들의 좌절과 긴 노동의 그림자 위에 서 있습니다. K-콘텐츠 산업의 화려한 성공은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소리 없이 무너지는 사람들의 삶을 담보로 합니다. 니체의 말처럼, 이편은 저편을 먹고살며, 문화의 황금기는 다른 한쪽의 몰락 위에 서 있습니다.
훌륭한 정치는 국민이 정치에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화를 꽃피우는데만 정신을 쏟고 정치는 전문가에게 맡겨둘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예술적으로 살아낼 때 우리의 문화가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나라걱정 그만하고 나의 삶에 집중하며 나의 삶을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치가 문화의 수준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가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
- 김종원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