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처음 만난 건 아는 분의 소개 덕분이었다. "거제도 깡촌 출신인데, 고등학교까지 거제에서 다니고 너와 같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고 권하셨다. 남편도 바로 옆 마을 아가씨가 같은 대학을 다녔다니 궁금했다며 흔쾌히 만남을 승낙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눈이 나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직장 동료가 "소개팅엔 안경을 쓰지 말라"며 조언했다. 흐릿한 시야로 호텔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고,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좋았다. 어린 시절 거제도의 추억과 대학 시절의 이야기들이 대화 속에서 하나둘 오갔다. 공감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즐거웠다. 그날 우리는 대학 시절 추억이 서린 학교 앞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호떡집에서 떡볶이, 순대, 호떡을 나누며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따뜻하고 정감 있게 이어졌다.
그날 이후 우리의 데이트가 시작됐다.
남편은 창원에, 나는 부산에 살고 있어서 평일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매일 밤 전화를 했다. 밤마다 수화기를 붙들고 이야기하느라 우리 집 전화는 10시 이후엔 늘 불통이었다. 주말이면 금요일 퇴근 후 바로 부산으로 와서 일요일까지 데이트를 즐기고, 다시 직장이 있는 창원으로 돌아갔다.
늘 전화데이트를 하고 주말에 만날 때는 안경을 쓰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를 흐릿한 인상과 좋은 목소리로만 기억했다. 목소리를 들으며 이 사람은 이렇게 생겼을 거야 나만의 왕자님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두컴컴한 대문 앞 가로등아래 그의 얼굴이 내 얼굴 5센티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상상한 얼굴이 아니었다. 얼굴이 대빵만 하고 넙데데한 대두상이었다. 그러나 이미 얼굴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돌이킬 수 없었다.
평일에도 5시에 퇴근하고 부산으로 넘어오곤 해서, 나는 그의 회사가 5시면 칼퇴근하는 직장인 줄 알았다. 결혼하면 매일 저녁 함께 밥을 먹고 산책도 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남편이 속한 팀에서 "노총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고, 동료들이 데이트를 위해 그의 야근을 대신하며 적극 밀어줬던 것이다. 결혼 후에는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그의 퇴근 시간은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남편은 "일하는 데 불편하다"며 부산의 신혼집을 두고 창원에 새 집을 얻었다. 주말마다 집에 왔지만, 해외출장도 잦았다. 신혼 3개월 만에 인도에 6개월짜리 출장까지 떠나버리며, 나는 신혼임에도 독수공방을 피할 수 없었다.
몇 년 후에는 근무지가 구미로 옮겨졌다. 창원보다 더 멀어지면서 나도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친정 근처로 이사했다. 우리는 주말부부에서 월말부부로, 나중에는 반기부부로 더 멀어졌다. 남편이 말레이시아로 직장을 옮기며 더 자주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이다.
남편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몇 년 전 싱가포르로 여행을 갔다. 남편은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을 예약했다며 "1박에 100만 원 가까운 호텔인데, 당신을 위해 큰맘 먹고 준비했다"라고 자랑했다. 호텔 루프탑에 있는 수영장 사진을 보여주며 "인피니티 풀도 있으니 수영복을 챙기라"며 준비를 단단히 시켰다.
하지만 호텔방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잠깐 다녀오겠다"며 카지노로 향했다. 그는 "돈을 왕창 따서 비싼 호텔 뷔페를 먹자"라고 약속했지만,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최고급 호텔방에서 밤새 독수공방했다. 다음 날 아침 초췌한 얼굴로 돌아온 남편은 "밤새 돈을 다 잃었다"며 편의점에서 아침으로 빵과 우유를 사주었다. 100만 원짜리 호텔에서 자고 편의점 조식이라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음날 싱가포르 쇼핑몰을 같이 걷고 있는데 남편이 갈 데가 있다고 한다. 내가 잡을 새도 없이 쇼핑몰에 나를 혼자 버려두고 가버렸다. 돈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 혼자 버려진 나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혼자서 "가든스 바이 더 베이"까지 걸어가 무료입장되는 곳만 찾아다니며 5시간 정도를 혼자 보냈다. 저녁 비행기였는데 비행시간에 얼추 맞추어서 남편은 나를 찾아왔다. 알고 보니 전날 돈 잃은 것이 너무 억울하여 돈을 인출하여 카지노에 또 간 것이었다.
말레이시아 겐팅 하이랜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여행지였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의 호텔만 덩그러니 있고 관광지는 없는 곳이었다. 알고 보니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카지노가 합법화된 지역이었다. 남편은 밤새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냈고, 나는 호텔방에 홀로 남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남편이 예약하는 호텔에는 항상 카지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는 밤새 도박을 즐겼다.
처음에는 화도 나고 섭섭했지만, 이제는 혼자 여행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됐다. 남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고, 나는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따로 또 같이"가 우리의 새로운 여행 스타일이 됐다.
자유로운 영혼 남편은 첫 번째 직장 이후 세 번이나 이직을 했고, 올해 초 네 번째 회사를 그만뒀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니, "고용보험 실업급여를 받아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며 지금은 꼭 그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
주말부부에 이어 반기부부까지 했던 남편이 지금은 매일 집에 있다. 처음에는 갑갑하고 내 자유로운 시간이 사라진 것 같아 불편했지만, 이제는 그와 함께하는 일상에 적응했다. 우리 부부의 모토는 "따로 또 같이."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삶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 남편의 자유로운 영혼을 받아들이며 때로는 당황하고, 때로는 억울해하기도 했지만, 결국 나만의 삶을 찾아가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로 또 같이"라는 삶의 방식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결국, 결혼은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진정한 동반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매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