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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Dec 04. 2024

내 마음의 쉼터, 퀘렌시아

내가 좋아하는 장소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숲 속의 작은 오솔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늘 설레고 궁금하다.

한 번은 영혼의 성소를 찾는 명상에 참여한 적이 있다.

눈을 감고 숲 속 오솔길을 천천히 걸었다.

양 옆으로는 키 큰 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고, 공기는 고요하다.

길은 천천히 어두워진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작은 오두막이 나타났다.

오두막 창문에서는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포근한 소파가 놓여있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타며 실내를 따뜻하게 덥혀준다.

나무가 타며 퍼지는 은은한 향, 식탁 위에는 따끈한 카모마일 티와 갓 구운 빵.

나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고 깊이 숨을 들이쉰다.

아늑하고,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곳에서의 휴식은 내게 완벽한 위안이었다.


힘들 때마다, 피곤할 때마다, 심지어 행복할 때도 나는 그 오솔길을 지나 오두막으로 향했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나만의 성소였다. 명상을 하다 보면 종종 잠이 들곤 했는데, 깨어날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났다.




대학 시절, 내가 좋아하던 또 다른 장소는 작은 벤치였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외진 자리였는데, 그곳은 나만의 힐링 스팟이었다. 수업 중간 비는 시간에 나는 늘 거기 앉아 사색에 빠지곤 했다.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갈까?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걸까? 종교란 무엇이며, 나는 무엇이 될까?”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고독과 자유로움이 좋았다.


그곳에서 책도 많이 읽었다. 장길산, 토지,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을 주로 읽었다.

혼자 있다 보니 종교를 전파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부처님을 믿으라, 하느님을 믿으라, 심지어 JMS를 믿으라며 말이다.

그들의 권유를 따라가기도 하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내게 다가왔다. “안녕, 너는 누구야? 무슨 과?” 잘생긴 선배가 말을 걸어오니 마음이 설렜다. “저는 OO과예요.” “여기 혼자 앉아 있네. 외로워 보여. 인상이 참 좋다. 내일도 만날까?” 그렇게 우리는 벤치에서 다시 만났고,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며 가까워졌다.

어느 날, 선배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인상이 참 좋은데 조상이 네 안에 붙어 있는 것 같아. 제사를 지내야 해.” 당황스러웠지만, 선배의 말을 믿고 따라갔다. 그가 데려간 곳에는 사람들이 내 조상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사비는 네가 직접 내야 해. 그래야 복을 받을 수 있거든. 지금 돈이 없으면 나중에 알바해서 갚아도 돼.” 그렇게 외상으로 제사를 지냈다.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고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반복해서 제사를 지냈다. 다음 달 알바비를 모두 털어 제사비를 갚고난 후 잘생긴 선배와의 인연도 끝났다. 이후 나는 그 벤치에 다시 가지 않았다.




류시화의 수필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는 “퀘렌시아(Querencia)”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투우장에서 지친 소가 잠시 기운을 되찾는 공간,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을 뜻한다. 명상에서는 이를 인간 내면의 성소로 비유한다.


우리 삶은 투우장의 소처럼 매일 전쟁터를 헤쳐 나가야 하는 연속이지만, 자신만의 퀘렌시아가 있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장소가 물리적인 공간일 필요는 없다. 나만의 성소를 찾는 명상, 여행, 종교생활, 음악 감상, 맛있는 음식,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도 소중한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작가들에게는 글쓰기가 소중한 퀘렌시아가 될 것이다.


대학 시절, 내 벤치 퀘렌시아는 아쉽게도 멋진 선배와의 추억과 오해로 끝나고 말았지만, 오늘 나는 다시 나만의 쉼터를 찾으려 한다. 다시 눈을 감고 숲 속 오솔길을 헤치고 따뜻한 오두막 문을 지나 나를 감싸 안아줄 그곳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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