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즈음, 평소 존경하던 교수님께서 호를 지어주셨다. "소정(素井)"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로 풀이하면 '소박한 우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이것을 작은 연못으로 이해하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께서는 "호는 소박하게 짓는 법이니 큰 의미를 담지 않아도 좋다"라고 덧붙이셨다. 그 호를 처음 받았을 때, 나는 그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이 호를 어디다 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나중에 글을 쓰게 되면 자연스레 사용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호를 쓸 일이 생기지 않았다. 카페나 블로그 닉네임으로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올해 10월,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 호가 떠올랐다. 교수님께서 마치 이 날을 예견이라도 하신 것처럼, 내게 딱 맞는 이름을 미리 주신 기분이었다.
작은 연못, 소정의 세상
소정이라는 이름을 곱씹으며 떠오르는 의미를 붙여본다.
작은 연못은 작은 세계다.
그곳엔 작은 돌멩이가 놓여 있고, 작은 풀들이 자란다. 적은 양의 물이 소담하게 고여 있고, 그 물속에는 조그마한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작은 곤충들이 잠시 노닐다 가고, 지나가던 작은 동물들이 목을 축인다. 올챙이 몇 마리가 개구리가 되어 헤엄치고, 물 위에는 이파리들이 둥둥 떠다닌다.
연못의 물이 넘칠 정도로 비가 와도, 연못은 자기 크기만큼의 물만 담는다. 가뭄이 찾아와도 연못은 늘 작은 물을 솟아내어 생명을 이어간다. 작지만 완전한 세계, 작은 연못의 세상이다.
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는 작은 연못 작가다.
내 글도 내 이름처럼 소소하다.
작은 연못의 물을 길어 올리듯,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때론 송사리처럼 빠르고 재치 있는 글, 때론 조약돌처럼 둥글둥글한 글, 때론 이끼처럼 미끄덩한 글, 개구리처럼 시끄러운 글도 있다. 소소하고 평범한 글들을 적어가며 나의 작은 세계를 그려낸다.
나는 큰 연못이 되고 싶지 않다. 작은 연못으로 남아,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나가는 이들이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목마른 이들에게 한 모금의 시원함을 줄 수 있게, 모든 생명을 품고 또 흘러가게 만들 수 있는 연못이 되고 싶다.
브런치 숲 속의 소정샘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며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브런치 숲 속 소정샘, 누가 와서 보나요? 달밤에 독자가 손 비비며 깨어나 글 읽으러 왔다가 라이킷만 누르고 가지요."
이렇게 내 이름에 얽힌 이야기는 브런치 작가로 이어졌다.
큰 연못처럼 화려하거나 많은 것을 담지는 못하지만, 작은 연못만의 소소한 이야기를 글로 그려내고 싶다. 맑고 투명하게, 읽는 이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다. 내 이름처럼 소박하지만 소중한 세상을 담으며, 그렇게 나만의 작은 연못을 꾸려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