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단연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이다. 어릴 적부터 늘 먹어온, 그래서 입에 익숙하고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들이다. 된장찌개, 생선찌개, 시래깃국 같은 국물요리와 각종 나물 반찬, 그리고 생선구이처럼 평범하지만 소박한 한식들이 특히 좋다.
그중에서도 내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은 바로 열무김치다. 아삭아삭한 열무의 식감과 새콤달콤하면서도 알싸한 열무김치 국물의 조화는 언제 먹어도 환상적이다. 갓 만든 열무김치부터 적당히 익은 열무김치, 그리고 톡 쏘는 맛이 더해진 시어진 열무김치까지, 각각의 맛이 다 다르고 그 매력이 남다르다.
여름철에 즐겨 먹는 열무김치는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유익하다. 열무는 비타민 A, C와 무기질이 풍부하고 식이섬유도 많아 변비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100g당 14칼로리밖에 안 되는 저칼로리 알칼리성 식품으로, 여름철 땀으로 빠져나가는 무기질을 보충하고 지친 체력을 회복시켜 준다. 열무김치 국물은 유산균을, 건더기는 프리바이오틱스를 대신해 "천연 보약"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열무김치를 만병통치약이라 생각한다.
나물의 나라, 나물의 맛
내가 또 좋아하는 음식은 나물 반찬이다. 한국은 나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국어대사전에 나물이 들어간 단어만 3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우리 민족의 나물 사랑은 대단하다. 예로부터 흉년이 들면 산과 들에 나는 나물들로 연명했다.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 같은 발효식품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먹을 수 없는 풀의 독성도 중화시킬 수 있었다. 고사리, 두릅, 원추리 같은 독초도 손질을 잘하면 훌륭한 음식이 되고, 쑥, 머위, 깻잎처럼 향이 강해 외국인들이 꺼려하는 재료도 우리 손맛으로 맛깔나게 변신한다.
이런 나물들과 열무김치를 넣어 만드는 돌솥비빔밥은 내가 점심으로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지글지글 뜨거운 돌솥에 담긴 비빔밥은 한국적인 맛의 정수다. 고소한 참기름 향, 밥이 눌어붙으면서 나는 고소한 냄새와 바삭한 식감, 그리고 각종 나물과 고추장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화려한 맛은 오감을 만족시킨다.
술술 넘어가는 잔치국수의 매력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잔치국수다. 이 음식도 엄마가 자주 만들어주신 덕분에 친근한 음식이다. 복잡한 고명보다는 김치, 부추, 애호박 정도를 올리고 양념장을 더한 단순한 국수를 좋아한다. 국수를 먹을 때면 술술 목으로 넘어가는 그 부드러운 느낌이 참 좋다. 잔치국수의 진한 멸치 육수에 김치의 상큼함, 간장의 짭짤함, 참기름의 고소함이 더해져 한 그릇 뚝딱 비우는 건 금방이다. 사실 세 그릇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다. 다른 밀가루 음식에 비해 소화가 잘되고 비교적 저 칼로리 음식이다. 세 그릇도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고 한 그릇만 먹으면 쉽게 배가 고파진다.
시어머니와의 음식 추억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가장 열심히 했던 때는 거제도 시어머니 댁에서였다. 시골에서는 요리 재료를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준비해야 했다. 밭에서 채소를 뜯어오고, 생선도 직접 잡아와야 했다. 메뉴는 정해있지 않았다. 계절별로 밭에서 나는 모든 채소들로 만든 음식이 그날의 메뉴였다. 생선을 잡지 못하면 새벽에 생선을 잡아오는 고깃배를 찾아갔다. 밤새 고기를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 배에서 내리는 싱싱한 활어를 사는 것이다. 회가 되기도 하고 무침이 되기도 하고 찌게도 만들고 소금을 뿌려 굽기도 했다. 양념도 없고 솜씨도 부족했지만 정성만은 가득 담아 열심히 만들었다.
오이무침, 가지무침, 쪽파무침, 시금치무침, 고추무침 같은 나물 반찬부터 갈치찌개, 고등어구이, 물메기탕, 우럭회, 탕, 구이까지 온갖 밭과 바다의 산물로 한 상 가득 차렸다. 싱싱한 재료의 맛은 어떤 양념이나 솜씨보다 월등했다.
어머니는 차려진 음식을 보시고 "아가, 상다리가 휘어지겠다.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감탄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 뿌듯함과 행복을 느꼈다. 지금은 시어머니가 안 계셔서 채소밭도 없고 더는 이런 음식을 준비할 일이 없지만, 그때의 추억은 음식과 함께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랑을 담은 음식, 추억을 담은 음식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고, 추억이며, 사랑이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 시어머니께 차려드렸던 음식처럼 마음이 담긴 음식은 몸을 튼튼하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오늘도 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엄마와 시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며 밥을 차린다. 내가 차리는 한 끼도 단순히 가족의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따뜻한 기억을 이어받아, 사랑과 정성을 담아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음식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마음을 전하는 가장 진솔한 방법이다.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