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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Dec 08. 2024

한강 노벨문학상 강연을 듣고

폭력과 사랑의 경계에서


며칠간 우리나라는 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대통령의 계엄 선언으로 국회는 탄핵 표결과 시국 선언으로 혼돈에 빠졌고, 거리에서는 탄핵 찬성 촛불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마치 45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난리통이다. 이 모든 것이 감추어지지 않고 모든 사건이 공영방송과 개인 방송을 통해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되지도 않을 나라 걱정에 몇 날 며칠 잠을 설쳤다. 시끄러운 뉴스가 온종일 내 감각을 점령했고, 남편은 그 뉴스를 하루종일 틀어놓았다. 남편이 외출한 일요일 아침, 비로소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유튜브를 켜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이 흘러나왔다.


"사랑은 어디에 있지? 팔딱팔딱 뛰는 내 가슴속에 있지. 사랑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지금 2024년. 군 헬기가 국회 잔디밭에 착륙하고, 탱크를 가로막은 시민들, 국회 창문을 깨고 난입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현실로 보도되는 이 시점에, 한강 작가는 폭력의 반대편에 서서 쓴 글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스웨덴에서, 그녀는 9살의 자신이 쓴 ‘사랑에 대한 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국말로 준비한 강의안을 담담히 읽어가는 한강작가의 고요한 목소리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몽환적이었다. 노벨문학상 작품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어 기쁘지만 '소년이 온다'의 그 계엄 상황이 지금의 현실과 닿아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아팠다.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는 인간의 폭력성과 결백함에 대해 묻는다. “인간이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 책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희랍어 시간'을 통해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질문하고 있다.


광주를 다룬 소설을 쓰면서, 그녀는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을까?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광주는 더 이상 특정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잔혹함과 존엄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의 대명사로, 현재형으로 우리 앞에 돌아온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도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할 때 작가가 나에게 직접 작품설명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경하라는 인물이 새를 구하기 위해 제주도로 떠나는 수평적 이야기와,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를 찾아가는 수직적 이야기, 그리고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히는 상징적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진다.


조용조용 영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한강을 듣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글처럼 맑고 조심스럽다. 자신이 보았던 것, 느꼈던 것이 작가의 마음속에 용광로처럼 녹아내려 글로 쏟아져 나온다. 그 글들이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가 되고 그녀의 작품을 읽고 감동받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동시대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나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과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로서 폭력과 권력의 속성을 이해받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그 이야기들이 예술로 승화되어 노벨문학상이라는 큰 결실이 된 것도.


그러나 2024년, 이 모든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탄핵을 둘러싼 대립, 계엄 논란, 그녀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정권의 흔적. 그리고 그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반대 시위를 벌이는 이들. 아이러니하고도 고통스러운 현재다.


한강은 묻는다. “세계는 왜 이렇게 폭력적인가? 동시에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이 그녀의 글쓰기를 이끌어온 힘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으로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사랑은 팔딱팔딱 내 심장에 있지 사랑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금실이지" 사랑에 대한 글을 쓰던 순수한 소녀의 마음이 자라서 세상을 겪고 슬픔과 기쁨과 아름다움과 비참함과 모든 경험을 겪고 다시 9살의 순수한 소녀의 마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은 사랑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작가의 강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보다 질문이 많았다.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나도 세상에 대한 정의보다 질문이 더 많이 생겨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왜 이럴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은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가게 한다. 그녀의 문학은 단지 글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초대다.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가능성을 함께 탐구하자는.


잠시 뉴스가 내 귀에 들리지 않는 시간,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그녀의 목소리는 내 안에 수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나도 살아낼 것이다. 아픈 과거가 더 이상 나를 사로잡지 않도록,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사람과 사람사이 금실을 이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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