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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Apr 28. 2022

나타났다, 꽃! - 꽃 시 40편 필사

50일 글쓰기 - 11

셋째 민경이네 고등학교에서 시 필사할 학부모님을 모집한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이 이미 신청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이처럼 화사한 봄에 꽃을 소재로 한 시를 필사한다니. 아, 낭만적이다! 


며칠 후 민경이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나타났다, 꽃!」 사실 난 꽃을 즐겨 사는 사람은 아니다. 예전엔 기회비용을 따졌다. 꽃값이면 밥을 한 끼 먹겠다는 마음이 컸었다. 그러다 세월이 조금 흘러 꽃이 밥보다 좋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시들고 만 꽃을 쓰레기 봉지에 쑤셔 넣는 순간의 고통이 일주일의 행복보다 무거워 또 꽃을 멀리했다. 지금도 가끔 꽃을 선물 받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마지막 꽃잎 한 장이 남을 때까지 물을 갈고 줄기를 자르며 마음을 준다. 그래도 막상 내 손으로 꽃을 잘 사지는 않는다. 길에 흐드러지게 무리 지어 피어난 꽃들 앞에 오래 머무르는 것으로 꽃을 향한 마음을 달랜다.


그런데 꽃을 담은 '시'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조심스럽게 선을 맞춰 접어 표지를 넘긴다. 연필꽂이를 휘휘 저으며 마땅한 펜이 없음에 잠시 속이 상했다. 마치 펜이 필사의 성공을 결정하는 고갱이인 양, 딸아이 필통까지 뒤져봤다. 어쩔 수 없다. 내일 반드시 만년필 감성이 가득한 펜을 사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동아 스피드볼 0.7mm 라 적힌, 다이소에서 3개 천 원인가에 구입했던 펜을 들었다. 그렇게 첫 시, 강은교 시인의 「민들레」를 만났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참 많은 시와 노래로 그리고 그림책으로 민들레를 만났다. 이해인 수녀님의 「민들레의 영토」를 시작으로 「민들레 홀씨 되어」「민들레 꽃처럼 살아야 한다」와 같은 노래들을 듣고 불렀고, 지금은 아이들에게 「민들레는 민들레」 시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그 많은 민들레 중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온 시 「민들레」-  만나네요 자꾸 만나네요 / 쓰레기 더미 위에서도 /  폐허에서도 // 빛 너머 또 빛이 찾아와 / 하늘 아래 우리 모두 / 이슬로 맺혀 - 3,4 연인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남는다. 담담하고 한결같이 제 갈길을 가는 민들레. 쓰레기 더미든 폐허이든 가리지 않고 노오란 태양 빛으로 채우는 민들레. 강은교의 시인의 민들레는 겹겹이 빛으로 채워져 끝없이 일어서는 민들레가 아닐까.


이 봄, 귀하게 찾아온 꽃을 담은 필사. 

40일간 걸어갈 꽃 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 한가득 꽃이 피어난다.

봄이 피어난다.

 








<사진 출처 : 한국기행_문화_여행_음식_풍경_오색영산강_150_꽃, 한국교육방송공사, 공유마당,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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