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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May 01. 2022

돔배기

50일 글쓰기 - 13

내일은 시아버님 제사다. 전라도 제사상에 홍어가 올라간다면 경상도 제사상에는 꼭 돔배기가 올라간다. 돔베기는 소금에 절인 상어고기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경기도에서는 통 구하기가 어려워 경주에서 주문하곤 한다.

 

처음 돔배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어떤 고기 인지 몰어보면, 열에 일곱여덟은 육고기라 대답한다. 워낙 큰 고기를 잘라 네모 반듯하게 잘라 꼬치에 고정해두었으므로 모양으로 어떤 고기 일지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순전히 맛에만 의지해 어떤 고기 일지 알아내어야 하므로 더욱 혀에 느껴지는 맛에 집중하게 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잘 달궈진 팬에 돔배기를 익힌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익히 상어고기를 한 입 먹고서는 육고기라 대답하는 이유는 돔배기가 소고기나 돼지고기 맛이 나기 때문이다. 비린내도 없고 약간 쫄깃한 느낌도 그리 생각하는 데 한몫한다.


아이들에게 "이 고기는 돔배기야. 상어 고기지."라고 말하면 "와!" 또는 "상어도 먹어요?" "상어를 어떻게 잡아요?" 줄줄이 질문이 쏟아진다. 무섭고 사나운 상어를 먹는다는 사실이 놀라운 거다. 어린 시절의 나도 제사가 끝나 음식을 먹을 때 꽤 오랫동안 무서워 상어고기를 먹지 못했다. 상어 고기라는 말만 들어도 바다를 헤엄치는 상어가 떠오르고 상어에게 죽었다는 그 많은 고기들이 떠올랐었다. 그러다 돔배기를 한입 먹게 되고 또 먹게 되고 또... 그러던 어느 날 이처럼 맛있는 돔배기를 잡은 용감한 어부의 이야기가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용감한 어부는 그 무시무시한 상어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주었고, 이렇게 내 밥상엔 그 상어의 몸통 한 조각이 놓이게 된 것이다. 내 마음속에 떠오른 용감한 어부 아저씨 덕분에 나는 신나게 돔배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처럼 많은 상상을 하지 못한다. 돔배기 맛은 4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데, 내 마음만 이리 빈약해졌다. 내일 아버님 제사상에 잘 익힌 돔배기 산적을 곱게 올리며, 빈약해진 내 마음을 다시금 상상과 고소한 맛으로 채워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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