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생일이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큰 아이가 동생 생일을 축하해준다며 시간을 내서 왔다. 수업이 늦게 끝난다고 하니, 큰 아이랑 둘째가 미리 장을 봐 두겠다고 했다. 올해는 셋째 생일이 고조부님 제사와 겹치는 바람에 카드를 주며 제사장 목록도 쭉 적어줬다. 그리고 엄마는 늦으니 먼저 저녁을 먹으라 일렀다.
수업하는 내내 카톡이 울렸다.
“카톡”
‘엄마, 집에 당면 있어요?’
‘글쎄, 모르겠네. 그냥 하나 살래?’
“카톡”
‘엄마, 케이크도 우리가 사요?’
‘응’
“카톡”
‘엄마, 쇠고기 산적하는 거요. 얼마나 두꺼운 걸로 사요?’
‘엄마, 동태포 없는데 황태포 사도 돼요?’
“카톡”
“카톡”
“카톡”
케이크를 마지막으로 그 뒤로는 대충 ‘응’, ‘그래’, ‘물어봐’로 대답하다가 그마저 그만두고 어찌 되겠지 하고 내버려 뒀다.
아홉 시가 넘어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매콤한 고추 향이 나를 맞았다.
“뭐 먹었어? 매콤한 향이 집에 가득한데?”
“응? 매운 건 안 먹었는데?”
“우와! 이게 다 뭐야?”
아이들 말로는 제사라 정신없을 테니 미리 미역국을 끓여 저녁을 먹었단다.
“엄마도 없이? 민경아, 많이 먹었어? 언니가 뭐 해줬어?”
아직 치우지 않은 밥상에는 미역국과 잡채, 버섯 배추 말이, 참치를 넣은 두부 동그랑땡까지 그득하다.
“이걸 다 만들었어?”
“맛은 좀 그래. 엄마도 얼른 먹어요.”
“당신은 먹었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물어보니 많이 먹었으니 얼른 먹으란다.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가족들 생일이면 맛있는 생일상을 차려주는 게 내 선물이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은 탓에 마음과 달리 어찌나 맛있게 잘 넘어가던지 조금 민망할 지경이었다. 논우렁을 넣은 미역국도 간이 잘 맞아 맛있었고, 노랑, 빨강 파프리카 빛깔이 고운 잡채도 조금 심심하니 맛있었다. 실컷 먹고 나니 남편이 애들이 사다 놓았다며 아이스크림도 하나 꺼내 준다. 아, 행복하다.
그때 옆으로 슬그머니 온 민경이가 자랑을 늘어놓는다.
“엄마, 나 베스킨 OOO 아이스크림 쿠폰 5개 있다!”
“생일 선물 받았어?”
“응!”
“어머, 우리 민경이 인기쟁이인걸?”
민경이가 쿡쿡 웃는다. 그리고는 갖고 있는 선물 목록을 줄줄이 읊어준다. 고1인데도 셋째라 그런가, 첫째나 둘째와 달리 이리 행동해도 여전히 귀엽다. 노래 불러주는 친구들 전화까지 받으며 바쁜 생일 전야를 보내느라 밤늦게까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호들갑을 떤다. 민경이 생일 전야의 화룡점정은 설거지였다. 막내 태경이가 가위바위보에서 진 민경이 몫까지 혼자서 설거지를 하겠다며 생일 선물을 크게 투척한 것이다. 민경이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아, 행복한 생일 전야군!”
* 뒷이야기 : 내가 사 오라고 적어준 동태포는 전을 구울 재료였고, 둘째가 카톡으로 물어본 황태포는 말린 황태포였다. 이런, 오징어포와 황태포를 같이 사 오다니. 세상에나... 하지만 나를 대신해 장까지 봐준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순 없지. 황태는 찢어서 채를 만들어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