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글쓰기 - 32
사흘 뒤 건강검진을 받는다. 온라인으로 문진표를 작성해 보내라 했다. 음, 작년에도 굉장히 민망했더랬는데 올해는 달라진 점이 있으려나...
해가 거듭될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더 크게, 심각하게 느낀다. 평소 하던 일에서 예상치 않았던 일 하나만 늘어나도 우왕좌왕 정신을 못 차리고 저녁이면 파김치가 된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손목이 시큰거리지?'
바로 떠오르지 않아 아침부터 내 하루를 되짚다 보면 별생각 없이 책들을 좀 날랐거나 그림을 그렸거나 걸레질을 했음이 기억난다.
'뭐야, 이 정도 일로 이렇게 아프다고?'
'발바닥은 또 왜 아프지?'
'비가 오려나. 허리가 심상치 않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진다.
그러면서도 운동에 관한 조언은 정말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주 전이 생일이어서 아이들이 돈을 모아 선물을 준비했었다. 자기네 딴에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얼까 한참 이야기가 오갔나 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엄마가 절대 하지 않으리라.'라는 반론에 바로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좀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결국 아이들은 '편안한 신발'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이 들어서도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 걸까? 누가 봐도 헛된 희망인데 말이다.
문진표를 다 작성했다.
"일주일에 땀이 나는 고강도의 활동을 몇 회 하나요?"
"0회."
심란하다.
"일주일에 약간 땀이 나는 중강도의 활동을 몇 회 하나요?"
"2회."
"1회 당 지속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30분."
마음속으로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 '학교 수업' '저학년 야외 수업' '텃밭' 등등등, 끌어 모을 수 있을 만큼 끌어 모아봐도 30분을 채우기 힘들다. 움직일 때도 가능하면 최단거리를 계산하곤 한다. 그나마 주말에 '걸어야 산다!'는 남편의 닦달에 못 이겨 텃밭을 들러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게 최대치로 움직이는 시간이다. 외면하고 있었던 생활 습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 민망하다. 사흘 뒤 건강검진이라 오늘부터라도 죽을 먹어야겠어. 오늘부터라도 커피를 줄이면 좀 낫겠지? 오늘부터는 맥주도 마시지 말아야겠군. 오늘부터라도... 아,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이런 생각을 때문에 더 부끄러워진다.
점점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부담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생활 습관도 부담을 갖고 조직해야겠지? 세상 마음 편하게만 살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당장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내 몸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도록 애써봐야겠다. 건강 검진 사흘 전이니 딱 좋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