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현정 Aug 08. 2022

단술 - 질적 도약

  “우리 엄마 이름은 OOO입니다. 42살이고요. 언니가 있어요. 그리고요. 우리 엄마는 약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착해 보이는 외모, 보통의 키를 가지고 있어요. –중략 – 그리고 울 엄마는요. 냉면과 외할머니의 음식을 좋아해요.” 푸훕… 방학 특강으로 만난 4학년 아이의 발표를 듣다 나도 모르게 쿡 웃음이 터졌다. 외할머니의 음식이라.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을 맛있게 먹던 엄마의 모습이 4학년 아이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그렇구나. 선생님도 엄마가 해주는 음식 정말 좋아해!”하고 신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오 남매 중 첫째다. 고만고만한 아이 다섯이 함께 자라던 국민학교 시절, 우리 집 밥상은 매 끼니 남는 반찬이 없었다. 없는 살림에 엄마는 무 하나로도 반찬 서너 가지를 만드셨고, 어린 눈에 엄마는 마치 마법사 같았다. 통보리를 삶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쌀과 섞어 밥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반찬이래야 갖은 김치들과 가끔 등장하는 생선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은 늘 꿀맛이었다.

  형편은 어려워도 솜씨 좋은 엄마 덕분에 색다른 음식들을 맛볼 수도 있었다. 단술, 강정, 탕수육, 카스테라…. 돈을 주고는 사줄 수 없었던 엄마는 집에서 참 많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셨다. 그래 봤자 명절이나 일 년에 한두 번이었지만, 그때의 기억들은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누군가를 위한 음식을 만들게 하는 힘을 주곤 한다. 아버지가 장손인 까닭에 우리는 집에서 제사를 지냈고 엄마는 명절마다 꼭 단술을 만드셨다. 손님들이 오시면 사람 수만큼 밥그릇에 담고 숟가락과 함께 내가는 것은 내 몫이었다. 손님들께 내 드릴 양을 따로 빼두느라 늘 단술에 아쉬웠던 나는 손님들께 나가는 단술을 탐내곤 했다. 손님들 상을 치우는 것도 내 몫이었는데, 불평 없이 야무지게 상을 치웠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해도 명절만큼은 떡도 과일도 넉넉해 어른들은 식혜를 다 드시지 않고 물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쌀밥으로 만든 ‘단술’, 내가 누리는 최고의 호사. 손님들이 남긴 단술 삭은 밥까지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을 만큼 달짝지근하니 정말 맛이 좋았다. 상을 내가다 말고 혼자 등 돌리고 앉아 남은 단술을 퍼먹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온 엄마는 내 등짝을 때리곤 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맛, 지금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단술은 시간과 정성이 만드는 음식이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도 않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세상 부럽지 않은 맛이 만들어진다. 엿기름을 물에 빨아 뽀얀 물을 얻는다. 그 물을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붓고 따뜻한 곳에 둔다. 밥알이 삭기 시작해, 어느 순간 하나, 둘 물 위로 뜨기 시작한다. 밥알이 제법 동동 떠올랐으면 설탕을 적당히 넣고 팔팔 끓인다. 더울 때 후루룩 밥까지 떠서 먹는 ‘단술’도 별미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살짝 얼려 시원하게 먹는 맛이 일품이다. ‘단술’은 귀한 쌀과 오랜 시간을 담은 사랑이고 정성이다. 그래서 흔하지만 귀한 음식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단술’은 처음에는 별다른 맛이 없다. 그냥 물에 밥을 말아놓은 맛이다. 하지만 엿기름에 밥이 삭고, 그 물을 오래 달이면 점점 더 구수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놀랍지 않은가. 단순한 재료들이 모여 서로 작용해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기 위한 준비 시간이 길다. 글을 읽다 보면 모르는 것투성이다. 게다가 뒤늦게 독서 지도 분야에 뛰어든 나로서는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늘 자신이 미덥지가 않다. 내 모습이 꼭 엿기름 물과 밥알 같다. 흔하디 흔한 재료. 고만고만한 사람. 그래도 단술을 만들다 보니 ‘얘들도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리고 힘을 내서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데, 하물며 사람이 되어서 단술만큼은 해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오래,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는 건 할 수 있지 않니.’하고 말이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처음부터 월등히 뛰어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하는 힘이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눈치가 없어서 혼자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오랫동안 뭔가를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면 작더라도 성과가 보인다. 그 성과를 어떻게든 붙잡고 나에게 점수를 준다. 작은 성공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새로운 동기를 부여한다. 반복된 성공은 다시 긍정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는 개념이 있다. 양적 변화가 축적되어 그 에너지가 일정한 한계에 이르면 전혀 다른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읽고 쓰고, 다른 분들과 함께 공부하고, 경험치를 높여가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나의 에너지가 가득 찼을 때 전혀 다른 질적 도약이 반드시 일어나리라 믿는다. 단술이 시간과 정성과 밥알과 엿기름으로, 마침내 질적 변화를 이루어냈듯이 말이다.


  결혼 후 다섯 번째 전기압력밥솥을 사용하고 있다. 단술을 너무 자주 만들어 먹다 보니 자꾸 밥솥이 삭는다.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질적 변화’를 이루어낸 멋진 음식이 아닌가.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떤 음식을 닮았냐고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단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은 덜 달여져 깊은 맛은 덜하지만, 언젠가 깊고 달고 시원한 ‘단술’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건강검진 사흘 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