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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Dec 14. 2021

선물

아이들의 휴대폰은 선물일까 뇌물일까 계약에 의한 대여일까?

데리다의 선물.


선물은 댓가를 바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했다. 댓가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를 주관적인 기대로 내몬다. 일종의 뇌물이다. 주관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선물받은 상대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실망과 비난의 대상으로 내몰린다. 선물은 상대에게 내 마음을 주는 것이다. 그 마음이 건너가 어떻게 쓰이고 평가될지에 대해 더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건넨 것은 애초에 선물이 아니다.


선물은 또한 빌려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빌려주는 것은 언제든 그것을 다시 회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회수의 시점과 조건은 내가 결정하겠다는 권위의 표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물건은 내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물건을 받은 상대는 그 물건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거나 가치롭게 사용할 능력이 없거나... 여하튼 단지 잠시 사용을 허락받았을 뿐이다.


언젠가 잠시 스쳐지나갔던 데리다의 '선물'이 떠오른 것은 휴대폰 때문이었다. 휴대폰을 압수하는 문제로 복잡했던 마음이 '선물'과 '소유'라는 외피를 입은채 눈앞에 두둥실 떠올랐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의 물건을 압수할까? 아이들은 왜 그 압수가 부당하다고 느낄까?


아이들이 달려오며 "선생님, 저 휴대폰 생겼어요!"라고 외친다. "그래? 좋겠네!"하면 "아빠가 사주셨어요."라며 흐뭇하게 웃는다. 저 아이에게 휴대폰은 아빠께 선물받은 자신의 물건이다. 아빠께 잠시 빌린 물건이라는 혹은 언제건 계약이 깨졌을 때 다시 아빠께 돌려드려야 할 물건이라는 인식은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는 표정이다. 저 휴대폰은 누구의 소유인가?


아이들은 휴대폰의 사용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 게다가 어른들의 기대만큼 아이들이 휴대폰을 절제하여 사용하리라는 기대 또한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각종 알고리즘과 인터넷 세상의 작동원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기계에 부여하는 의미 자체가 계약 당사자들간에 합의할 수 없을만큼 다르기도 하다. 스스로 계약을 지속할 경제적 능력이 없으므로 혹은 이성을 발휘해 적절히 조절하며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휴대폰은 아이들의 소유가 될 수 없는가? 아이들이 휴대폰을 소유할 자격은 언제든 박탈당해도 되는가? 애초부터 이 계약은 특수하다.






나는 휴대폰을 생각하면 내 대학생활이 떠오르곤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학을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4년 등록금을 지불할 능력은 없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었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기로 결정한 내게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고단한 삶을 등록금으로 바꾸어 아낌없이 내주셨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국가에서 저금리로 끊임없이 등록금을 빌렸고 나는 당장 빌린 돈의 이자도 갚을 능력이 없어 졸업할 때까지 이자마저도 부모님께 기댔다. 그렇다고 대학 생활 내내 내가 부모님의 마음에 쏙 드는 대학생활을 했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5년 반이나 다녔던 대학. 어떨 때는 메뉴얼대로 충실하게, 또 어떨 때는 내가 살고 싶은 모양새로 그렇게 살았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나에게서 대학생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겁박을 하신 적이 없다. 그 후 지금까지도 '우리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류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인생의 단단한 기초를 세워준 나의 대학생활을 부모님께 빚졌다 감사하며 살아간다.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선물을 주셨다. 댓가를 바라는 뇌물이나 철회 가능한 계약이 아니라 내가 알아서 쓰고 책임질 수 있는 선물 말이다. 부모님께서 주신 선물이 누구나 누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잘 꾸려나가야 할 기회임을 배울 수 있었기에, 나는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휴대폰은 '중독'이라는 측면에서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당연히 아이들을 중독에 빠지도록 방치해서도 안된다. 약물오남용 교육을 담당하고 있기에 그 누구보다 '도파민'의 힘에 자주 놀라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아이들이 언제든 철회가능한 계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불안하다. 언제든 일방적 철회가 가능한 계약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책임지는 태도를 배울 수 있을까? 계약 조건을 만족시키기 급급해 얕은 수를 쓰는 것부터 배우지는 않을까? 우리의 사회적 관계는 과연 계약으로만으로 이루어질까?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선물을 주는 것은 바보같은 짓일까? 선물을 받은 사람의 재량을 믿는 것이 무책임한 일일까?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옳을까?


여전히 고민은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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