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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Apr 21. 2022

그리움

50일 글쓰기 01

출근길, 아직도 지지 않은 개나리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개나리가 이렇게 온 동네에 피어나면 그게 그렇게 이쁘더라. 남들은 벚꽃 구경을 간다지만, 나는 개나리가 더 나은 것 같어."

집안의 종부(宗婦)였던 어머니는 감정을 드러내는 분이 아니었다. 좋다 싫다 말없이 해야할 일을 하는 분이셨다. 그랬던 어머니가 개나리가 좋다고 하셨다. 암이라는 '적'을 만나 끝을 알 수 없는 전투를 시작하고 나서야 말이다. 결혼 후 스무해를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보다 마지막 한 해에 나눈 이야기가 더 많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춘기 그리고 친구. 그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가슴에 쌓아두고 사셨을까. 말랑말랑한 마음이 건너와 내 기억으로 남았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은 시간을 쌓고 기억을 쌓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숱한 감각으로 남는다. 조곤조곤 조용하게 건네는 말소리로, 아궁이 장작타는 냄새로, 진하게 끓여낸 추어탕 맛으로, 거칠고 휜 손가락 마디의 까칠한 감촉으로 그리고 온 동네를 가득 채운 노란 개나리로. 그 감각이 비슷한 순간을 만나면 그 사람을 만난듯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과 감각으로 쌓이고 있을까? 아니, 쌓아가고 있을까.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다.

어머니는 1년 암과 싸우다 돌아가셨다. 겨울 초입에 떠나 결국 그 좋아하던 개나리를 다시 보지 못하셨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봄이면 어머님을 만난다. 어머님이 기다리다 채 만나지 못한 그해 봄을 만난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까지 한껏 담아 더 힘을 내 걸어간다. 아, 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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