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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Sep 23. 2023

예민함이 죄는 아니잖아?!

내 안의 '블루독' 이야기 6

4살경, 3살배기 남동생이 끓는 물에 팔 전체를 데이고 죽어갈 듯 울어재끼는 사고를 목격했다. 엄마는 마당에 계셨었고, 동생과 즐겁게 놀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벌어진 사고다. 나는 너무나 놀라 그대로 얼어붙었었다. 다친 동생을 들쳐업고 병원으로 달리는 엄마의 뒷모습...나혼자 덩그러니 얼음인채 울지도 못하고 '내가 동생을 다치게 만들었나봐...'하는 자책감...엄마의 굳어있는 표정을 통해 느끼는 '너는 누나가 되서 동생도 안보고 뭐했냐?!' 하는 두려움...'내가 동생을 밀지 않았'라고 말하고 싶은 억울함...그렇게 얼어버린 4살의 내가 또 다시 등판했다.


여전히 그때처럼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얼어있다. 얼어있는 정서를 알아봐달라고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 남편의 '너는 건강염려증이야'라는 소리에 화가 머리통을 관통하고 터져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거기'에서 엄마에게 "나도 너무 놀랐어...나도 안아줘"라고 말하지도 울지도 못했던 나는 '지금-여기'에서도 남편에게 "사고는 크지 않았지만, 나는 많이 놀랐어...나에게 '별일도 아닌거 가지고 예민하게 군다'고 말하지 마!"라고 반박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 나를 내가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얼음'이다. 술래가 나에게 '땡'을 외쳐주지도 않고 집에 가버렸다.

무의식의 여러 원리 중에 '유사성의 원리'가 있다. 이번 사고는 결과적으로는 죽음과 연결되지 않았지만, 7년전 교통사고로 즉사한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도로위 역주행 차량은 '그때-거기'에서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충격, 죽음에 가까운 위험을 떠올리게 했다. 엄마의 죽음과 동생의 죽어감, 그리고 나의 죽을 뻔함...이 3가지는 모종의 연결이 되어 내 안에서 역동하고 있다. 그 다이내믹 안에서 내 몸은 죽을 지경이다.


PTSD 증상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과각성되어 있는 면도 있지만, 기질 상 나는 예민하다. 남편은 반대로 너무 자극을 못느끼고 고통을 축소시키는 '둔한' 사람이다. 작은 자극 앞에서도 화들짝 놀라고, 작은 고통에도 아픔을 느끼는 내가 '너무 예민한 족속'이다.


'예민함'은 유독 한국사회에서 비난이 섞인 말로 사용되는 것 같다. '너무 예민하게 구는거 아니야?!', '어휴...예민하게 군다'등의 표현은 상대방에게 공감은 못해줄 망정 비난으로 펀치를 날리는 언어폭력이다.


'감각이 잘 발달한'이라는 두가지 영어표현은 sensible sensitive. 감각이 발달하면 잘 느낀다. 고통도 잘 느끼지만, 기쁨도 잘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도 잘 헤아릴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나의 분석가는 나의 이 예민함에 대해 '네 마음'비단'이다. 아주 잘 다루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명품을 만들 수 있지만, 거친 손으로 함부로 다루면 금세 망가질 수 있다. 너의 그 고운 비단결로 많은 내담자들이 살아날거다'라고 승화시켜 주셨다. 그 분 또한 섬세한 분이셔서 나의 섬세함을 잘 알아차려 주신다.


나의 예민은 남편 눈에는 그저 제거해야할, 비난해서 물리쳐야할 대상이다. 하지만 sense가 발한 사람 모두에게 'You are too sensitive'라고 퉁쳐서 비난면 안된다. 잘 활용하면 제법 쓸만한 재능이기 때문이다.


통증을 느낄수 있어야 치료적 접근이 가능하다. 한센씨 환자들이 위험한 이유는 통증을 못느끼기 때문이다. 통증을 느낄수있다는 것은 오히려 사람을살린다.


예민함은 중립적이다. 예민한 사람의 그 섬세함을 다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평가절하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들의 예민함 환경속에서 잘 담길수있다면, 그 예민함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섬세하고 자상하고 공감적인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니 둔한 사람들이여,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비난하기전, 한번만 생각하라.


'아...내가 미처 저들의 명민함을 못따라 잡는거구나...래서 그들을 깎아내리고 싶어하는구나...내 안에 원시적 시기심이 발동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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