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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Sep 29. 2023

" 며느리, 그 따위로 훈련시키면 안돼!"

내 안의 '블루독' 이야기 7

명절만 되면  2박3일간 무급 가사도우미로 팔려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나를 시어머니에게 넘기고 나면 자기 할 일이 끝난다. 시어머니는 마치 나에게 시키려고 일을 몰아놓고 기다린 사람처럼, 냉장고 청소부터 시작해서 설겆이 감을 몰아준다. 냉장고 청소가 끝나면 그때부터 전을 부치고 매끼니 10인분 식사 설겆이를 내가 해야한다.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나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30년간 그렇게 하다보면 명절 몇일 전부터 온 몸 여기저기가 쑤시기 시작한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진다. '명절, 런거 누가 만들었어?!'속으로 투덜거린다.

 

누군가와 30년을 만나면 정이 들게 마련인데, 어떻게 가족으로 만난 사람들인데도 30년간 정이 들지 않았을까...명절에 그들을 만나는 일이 이토록 싫은 그 이유를 아들 결혼준비하며 알게 되었다.


아들이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며 여자를 데려왔다. 애인같은 아들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서른도 되지 않아 결혼하겠다는 아들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부모가 시키는 결혼'을 했던 나는, '내가 원하는 결혼을 할테야'하는 아들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나는 결혼할 때 시댁에서 요구받은 예단이 많았었다. 그게 너무 치욕스러웠다. 그래서 내 며느리에게는 그런 치욕감을 전수하지 않기로 했다.


'예단을 해오지 말라고 했다'는 소리에 시어머니는 "너...며느리 훈련 그따위로 시키면 나중에 니 머리위로 올라오려 할거다!"


30년 시집살이 동안에 밟아도 죽은 척했던 지렁이는 그 '훈련'이라는 소리에 뚜껑이 열렸다. 30년간의 묵었던 분노가 응집되어 강한 논리로 터져나왔다. 드디어 지렁이가 '꿈틀'거렸다!


"어머니, 저는 훈련생을 받는게 아니고, 가족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제 며느리는 제가 알아서 할테니 저 대신 훈련시키지 말아주십시요"


내가 말을 했는데, 내가 놀랐다. 내 안에 그런 힘이 있었다니...


그날, 그 한번의 '꿈틀'은 나를 새롭게 인식하는 힘이 되었다. '어쩌면 내가 지렁이가 아닐 수도 있어...'지렁이라면 이렇게 짧고 굵게 힘을 행사할 수 없었을거야...


그때 아들이 며느리를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시어머니 앞에 가면 주눅이 들어서 '무급 가사도우미'로 살고 있을 것이다. 며느리 덕분에 나는 시어머니가 될 수 있었고,  은 시어머니라는 계급장 달고 크게 '꿈틀'할수있었다.


며느리는 훈련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이다!


"어머니, 언제 또 서울 오세요? 어머니랑 대화하며 육아고민이 덜어졌어요...자주 오시면 좋겠어요"

나는 그 말이 참 고맙다. 적어도 나는 만나고 싶지않은 교관이 아닌, 기다려지는 가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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