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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Aug 03. 2023

환영받지 못한 아이

영화로 마음 읽기 2


"내 몸속에 이물질이 들어있어!"      

    

영화 <스왈로우 swallow>에서 주인공 헌터는 강간범에 의해 생긴 아기다. 친부도 친모도 아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뱃속에서부터 이미 거절된 아이였다.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태어나, 이후로도 그녀는 의붓아버지와 씨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일까...재벌가의 상속자와 결혼을 하게 되어 그의 아기를 갖게 된다. 엄마의 뱃속에서 '이물질'로 살았던 그때에 느꼈던 거절감이 자극된다. 임신 소식 이후 그녀는 먹어서는 안될 이물질들을 삼키기 시작한다.          

 

증상은 그녀의 임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그 자리에서조차 시부모, 남편과의 대화속에 낄 자리를 찾지못하고 이질감을 느끼는 그때부터 였다. 차가운 얼음을 입안에 넣고 그 차가움을 느껴본다. 그 순간엔  소외감도,거절감도느껴지지않고, 입안 가득 느껴지는 차가움에만 집중할 수 있다. 다음날엔 구슬을 삼켜본다. 삼킨 구슬은 전혀 소화되지 않은, 원래 형태 그대로 변기로 흘러나왔다. 삼키기 어려운 것들을 삼킬수록 묘한 쾌감을 느낀다. 뾰족한 압정, 옷핀, 건전지, 작은 드라이버등을 삼킨다. 삼켰던 이물질들은 항문을 찢고 피와 함께 변기로 흘러나온다. 고무장갑을 끼고 그것을 건져낸다. 그리고 그것을 전리품처럼 전시한다.     


아기 초음파를 찍으며 발견된 이물질들로 인해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삼킬 때 기분이 어때요?'라고 묻는 정신과 의사에게 "삼킬 때 입안에 닿는 느낌이 좋아요...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기분이 좋아요". 그 말을 하는 헌터의 표정은 마치  "다른 사람들은 다 '이물질'이라고 배척하지만 나는 삼킬 수 있어요. 저 대단하죠...?"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유능해져서 그들안에 섞이고 싶지만, 자신의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환상을 통해서라도 '그 자리'에 도달하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거절당하지 않을 만큼 유능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다.          


엄마가 원치 않았던 아이는 시부모도 원치 않는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쇼핑몰에서 목욕용품을 팔던 그녀에게, 재벌가의 며느리라는 신분은 소화되기 어려운 ‘이물질’이었다. 정신과 의사에게만 털어놓았던 자신의 출생 비밀이 남편에게 알려졌을 때 헌터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그때 그녀가 찾은 곳은 먼지 가득한 침대 밑...그렇게 넓은 집에서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는 장소가 고작, 먼지 가득한 침대 밑이라니...어린 시절, 두려움이 가득했을 때 혼자 진정했던 곳이었을까...몸을 돌려누울 수조차 없는 그 비좁은 공간에서 그녀는 잠이 들었다. 그녀곁에서 '이 곳은 안전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기때문이다. 남편이 아내를 감시하도록 붙여놓은 시리아 출신의 남성 가사도우미, 루아이. 그는 그녀를 억지로 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기꺼이 그녀 곁에 누워 그녀의 불안을 함께 견뎌주려 한다.


나는 그때 내가 신이라고 느꼈다      

   

정신병원 강제입원시키려는 시부모로부터 탈출한 헌터가 찾은 곳은 친부의 집이다. 마침 친부의 생일파티가 진행중이다. Happy 'Birthday' 라는 말에 그녀는 구토를 하고 만다. 나의 첫번째 birthday를 가장 슬픈 날로 만든 장본인이 자기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동자 색이 자신의 것과 같은 헤이즐넛색임을 확인하고는 끈끈한 연결을 느낀다. "내가 당신을 닮았나요?"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은 친부에게 '나도 당신처럼 괴물일까요?'라고 들려진다. "네가 수치스러운 존재인게 아니고 내가 한 짓이 그렇다. 나는 그때 나 자신이 신이라고 느꼈다"라고 대답한다. 친부는 감옥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노라고 말한다. 그 대답을 듣고 그녀는 바로 낙태시키는 약을 삼킨다. 임산부가 삼키면 안되는 '이물질'을 삼켜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몇시간 후 변기에 자신 안에 있던 그 '이물질'을 쏟아내 버린다. 소화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원래 형태 그대로 변기로 되돌아온 구슬, 압정과 달리, 낙태약은 제대로 소화되어  약효를 발휘해버렸다. 그 순간 그녀는 친부처럼 ‘나는 (생명을 주관하는) 신이다’라고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아니면 재벌가에서 ‘이물질’로 살게 될 아기가 장차 느껴야할 고통스러운 거절감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까...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이물질'로 존재했었던 자신을 그 아기에게 전가시키고 그 아기를 거절함으로써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던 것일까...     


총알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는 마음의 병이 없는 법이다        

 

마지막 장면은 헌터가 줄 곧 입고 있던 명품코트 대신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쇼핑몰 여자화장실에서 걸어나오는 장면이다. 쇼핑하러온 재벌집 며느리가 아닌, 쇼핑몰에서 일하는 직원의 모습으로...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으리으리한 집에 혼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할 때보다 더 당당해보인다. "총알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는 마음의 병이 없는 법이다"라는 루아이의 말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녀는 너무나 고요해서 오히려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소외감과 분투해야했던 삶대신, 하루하루 전쟁같은 삶을 선택했다. 그런 치열함 속에서 감정은 고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절이 아닌 수용          


영화 속에서 헌터를 환대해준 사람은 가사도우미, 루아이. 그녀가 어떠한 상태이든 곁에서 그녀를 지켜준 한 사람,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한 사람...그녀를 안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봐준 유일한 사람. 그 한 사람의 수용 덕분에, 자신이 오랜동안 고민하던 친부와의 만남을 시도해 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친부의 사진을 품에 넣고 다니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했었다.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아버지...그는 그녀가 걱정했던 것처럼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고, 그저 한때 삶에 대해 무척이나 미숙했던 존재였음을 알게 된다. 그런 친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 단 한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고 환대해주고 사랑해주는 그 단 한 사람이 나를 살게 한다. 엄마의 자궁속에서 엄마가 먹는 것을 함께 먹으며 살던 아기는, 엄마, 그 단 한사람을 믿고 이 세상으로 나온다. 그 엄마가 자신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비록 강간범에 의해 생긴 아기였지만, 그 아기를 환대하고 소중하게 키웠다면 헌터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물질을 삼키며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도망가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몸 속에 생긴 아기에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기를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생기는 아이는 태어나면서 이미 환경으로부터 거절을 당한다. 그 시절의 경험은 암묵적인 기억 속으로 들어가 다른 양태로 반복될 수 있다. 거절당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양태로, 혹은 거절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양태로, 상대로하여금 거절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양태로...    

      

종갓집에서 첫 아이로 태어난 나는 중요한 ‘그것’을 달고 나오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에잇!’, 어머니의 눈빛은 ‘아이고...’였을 것이다. 그때의 그 눈빛은 기억나질 않지만, 자라면서 연년생 남동생에게 어른들이 주시는 환대의 눈빛은 기억난다. 남동생이 나보다 더 환대를 받는 이유는 나에게 없었던 바로 ‘그것...'. 친지들이 오시면 나는 헌터처럼 소외감을 느꼈다. 종갓집 종손에게만 집중되는 관심에서 더 이상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갔다. 차라리 혼자있는 외로움이 그들 안에서 느끼는 소외감보다 견디기 쉬웠다. 헌터가 씨다른 동생들에게 집중되는 관심 속에서 혼자 침대 밑에 들어가 자기를 위로했던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내가 무엇을 잘 못한거지...’ 아마도 헌터도 나처럼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헌터가 잘 못한 것이 무엇인가...그 아이가 엄마 뱃속에 생겨난 것에 대해, 그녀에게 나쁜 피가 흐르는 것에 대해 왜 그녀가 책임을 져야했을까...남동생에게 있는 ‘그것’이 없는 것으로 인해 왜 나는 차별을 받아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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