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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Aug 12. 2023

고통을 욕망하는 '그녀'

내 안의 '블루독' 이야기 1

역주행하는 차와 부딪혔다. 가벼운 접촉사고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갔는데, 속이 계속 미식거린다. 3일동안 증상이 지속되어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실에 앉아 첫 끼니를 먹는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른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     


어릴 때 남동생 두 명이 번갈아 가며 오랜시간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 선천적 기형인 동생과 아주 어릴 때 중증 화상을 입은 동생의 치료를 위해 엄마는 고생을 많이 하셨었다. 엄마가 되어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우리 엄마가 동생들 때문에 고생 많으셨지...’하는 마음이 들지만, 5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는 그런 마음일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늘 병원에 입원한 동생들 차지였다. 집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는 나는 엄마가 그립다. 하지만 동생들 때문에 늘 걱정 가득하고 지쳐 보이는 엄마를 위해 내가 해드릴 것이 무엇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라도 건강해서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려야지...공부를 열심히 해서 웃게 해드려야지...’ 했던 것 같다. 크게 아픈 적도 없었고, 아파도 내색하지 않았다.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독립적인 딸로 자랐다. 그런데 그것은 성격이 되어 동생들이 다 나았을 때,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엄마를 곁에 두려하지 않는 냉정한 딸이 되어 있었다. 나를 혼자 두고 병원으로 가버린 엄마에게 어린 아이는 ‘거절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돌아온 엄마에게 그 아이는 너무나 보고 싶었던 엄마인데도 제대로 안기지 못하고 오히려 거절해버리는 못된 딸로 변해있었다.     


뜻밖의 만남   

  

그 시절 그토록 욕망하던 그 자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자리에 와있는데,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녀’는 없었다. 엄마는 이미 7년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나의 미식거림 증상이 뇌진탕의 증상이기도 하지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엄마’와 연관된 심리적 요인이 있기도 하다고 말씀하신다.      

‘그곳에 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무의식적 소망은 무산되었지만,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의외의 만남이 있었다. 그 어린 시절, 나만 두고 병원에 가버렸을 때 느꼈을 거절감, 나도 남동생들처럼 엄마를 독차지해서 사랑을 받고 싶었던 그 욕망 때문에 서러움이 가득차 있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나도 동생들처럼 병원에 입원하면 엄마가 나만 바라볼까...’했었을 그 아이...엄마에게 생떼를 쓰며 나랑 있어 달라고 엄마를 붙잡고 싶었을 그 아이가 여전히 내 마음 안에 그때 그 상태 그대로 남아 있었구나...병원에 오면 있을거라 생각했던 엄마의 손길이 간호사들을 통해 느껴질 때마다 엄마를 그리워하게 되는구나...그 시절에는 너무 의젓하려고 애쓰느라 제대로 울지도 못했던 그 아이에게 ‘이제라도 실컷 울어...맥락없이 눈물이 나와도 참지 말고 그냥 울어...그래도 된단다’라고 다독여준다.      


인생의 주제는 반복된다     


정신분석가들은 인생의 주제가 반복된다고 한다. 엄마가 걱정할 일은 아예 하지도 않고 아파도 내색하지 않던 ‘착한 아이’는 결혼 후 남편과 아이들이 나에 대해 걱정할 일은 만들지도 않고 생기더라고 조용히 혼자 처리한다. 가벼운 교통사고라도 ‘남편에게 알려지면 안되는데...’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여서 얼른 합의해주기도 하고, 공업사 사장님에게 웃돈을 얹어주면서 남편 퇴근 전에 차를 고쳐놓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사고 후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씩씩하게 저녁 장을 보러 가고 저녁을 차리고 아침을 차리고...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미식미식한데도 참아가며 그러고 있는 내 자신이 답답하다. 그러나 나의 무의식은 나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고 있었다. 너무 ‘의젓’하려고 하는 나를 강제적으로 멈추게 할 방법이 필요했다. ‘나 여행 좀 다녀올게...’라는 톡을 남기고 나는 혼자 병원에 입원했다.  여전히 나는 남편에게도 나를 다독일 자리를 내어주지 못하는, '의젓한' 아내이다. 그동안 일중독이던 남편이 이제야 가정으로 돌아와 나에게 관심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30여년간 나를 '거절'하고 일에만 빠져있었던 남편에게 곁을 내어주지 못한다.  그 시절 엄마에게 느꼈던 그 원망감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눈물이 가져다 준 감사     


어이없는 사고였다. 도로위 역주행이라니...억울함이 남을 만한 사고였다. ‘내가 왜 답답한 병실에 갇혀 있어야해?!’라고 화가 날 만도 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문득, 감사하다.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만날 수 없었던 ‘그녀’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50년 넘게 살고 있었는데, 나조차 그 눈물을 외면하고 살았던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울어도 되...’라며 ‘그녀’가 상실했던 것들을 충분히 애도할 수 있게 도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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