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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Aug 31. 2023

"밥은...?"

내 안의 '블루독' 이야기 2

 누군가 나에게 '밥은...?'이라고 물어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교통사고 이후 나는 ‘좀 어때?’하는 가족들의 질문 앞에서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 말에서 진정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느낌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형식적으로 물어보지만, 정작 내 대답에는 관심이 없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손상된 엄지 발가락과 발목이 욱씬거려서 오래 서있는 일이 어렵지만 말하지 못한다. 어느 날은 ‘응...괜찮아...’라고 하고 나면, 오래 서있기 어려워서 밀키트로 대충 만들어 준비한 저녁식사가 미안하고, 어느 날은 ‘발목과 발등이 아파서 서 있기가 힘드네...’하고 나면 저녁 산책에 나가기가 불편해진다. 허벅지 근육이라도 만들어서 발목 통증을 없애려고, 사고 이후 모래위 걷기를 하고 있는 나에게 '산책은 괜찮고 저녁 준비는 어렵냐'고 할까봐 괜시리 불편해진다. 그러다 남편과 딸에게 ‘점심은 제대로 챙겨 먹었어?’라는 말 한번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문득 서운해진다. 몸이 아파지니 누군가 나에게 ‘밥은...?’이라고 물어봐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 럽게 느껴진다.


문득 엄마가 자주 물었던 ‘밥은...?’이 떠올랐다. 사춘기때부터 나는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음식 솜씨가 좋으셨던 엄마는 늘 부엌에 서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먹는 일 따위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것을 물어봐주는 근사한 엄마였으면 좋겠다 싶었었다. 친구 엄마처럼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멋진 여성이면 좋겠는데...싶었다. 내가 집에 가면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묻기보다 ‘밥 안먹었지?’하면서 부엌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기 싫어, 집에 가기전 시장에서 떡볶이로 배를 채우고 들어간 적도 많았다. 그 시절 나는 엄마와 마주앉아, 밥보다 더 귀한 마음을 나누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 나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놓고 나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집에 가면 ‘밥은...?’이라고 물어주는 그 ‘시시한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결혼 전 남편은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왔을 때 엄마가 집에서 아이들을 맞이해주면 좋겠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선생님이셔서 남편은 어릴 때부터 늘 혼자 집에 있었고, 자기 아이들에게는 그런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마음에 대해 공감이 되어서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선택했다. 사춘기때 그리도 싫어하던 그 시시한 엄마, 아이들을 보자마자  ‘밥은...?’이라고 묻고 부엌으로 달려가는 그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먹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들이 되었으면 하는 그 ‘멋진 인간’의 자리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주는 것이 그들의 건강이고 그 건강이 그들로 하여금 ‘멋진 그곳’에 도달하게 해줄 것임을 알게 된다. 엄마도 나에게 ‘네가 원하는 그 멋진 자리에 가려면 밥을 잘 먹어야 해’라고 말하고 싶으셨나 보다...그 자리에 서보니, 누군가를 잘 먹여서 잘 키워내는 일은 결코 시시한 일이 아니라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가 담은 김치, 엄마표 된장찌개, 엄마표 깻잎조림이 그립다. 부엌에만 서있는 엄마가 시시해보이지 않고 아름다워 보였다면 나는 지금 엄마의 음식솜씨를 닮아있을까? 그 시절 우리집은 늘 손님으로 북적였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 나누는 일을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손맛이 좋은 사람들이 부럽다. 이웃을 불러 쓱싹쓱싹 대충대충 버무려 맛있는 한 상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그 어떤 재주를 가진 사람보다 부럽다.      


사춘기때 부러워했던 의사엄마를 가진 그 친구는 결혼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자기 아이를 방치하는 엄마가 될까봐 두려워...’ 그녀는 나만큼이나 자기 엄마를 시시하게 여긴 모양이다. 그 친구에게는, 언제 찾아와도 맛있는 김치부침개를 만들어주던 우리 엄마가 부러운 대상이었고, 나는 부엌보다는 병원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의사인 그 친구 엄마가 부러운 대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시시해 했던 그 엄마의 모습대로 두 아이에게 ‘밥은...?’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었고, 엄마가 벌어온 돈보다 엄마가 해주는 떡볶이가 그립던 그 친구는 요리사가 되었다. 그녀는 자기를 위해 제대로 된 밥을 지어 먹이고 싶어 요리를 배웠는데,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지금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밥은...?’이라고 물어봐주어야겠다. 그녀에게 그 말은, 아니 누구에게도 그 말은 정겨운 사랑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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