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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Nov 10. 2021

바닥에 쏟아진 달빛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20. 바닥에 쏟아진 달빛



 자정이 넘도록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한 줄로 바닥을 비추는 달빛을 보고 있었다. 커튼 틈으로 보이는 밤하늘은 끝도 없이 펼쳐진 대양 같았다. 영화에서나 보던 그 검은 바다, 멀리 가로로 그어진 수평선 한 줄. 가끔 영화관에서 그런 장면이 펼쳐지며 아무런 음악도 없이 적막한 장면이 이어질 때면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다.

 혼자서만 잠에서 깬 듯한 느낌. 모두의 얼굴에 비친 푸른 물빛이 그들이 몰입한 깊은 바다의 존재를 암시해주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닿기도 전에 그 넓고 아득한 바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내게 불어넣고 있던 것이다.

 그곳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희망을 찾으려 애썼다. 자신이 머무른 곳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으므로 그들은 수평선 끝에서 점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나타날 때마다 자신의 온 삶을 내던져 절박하게 노를 저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번번이 실패해야 했다. 각본가의 펜대에 놀아난 관객들은 또 거짓말처럼 닥쳐온 돌풍이나 파도, 우연히 부서져 버린 노의 손잡이만 쥔 주인공 손을 보고는 더러는 좌절하고 더러는 분노하며 운명을 비관하다가도 다시 저항하는 그를 따라 마지막까지 객석을 지켰다.

 내 삶을 가지고 노는 각본가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어디에서 나를 보고 있으며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역사가는 행운의 여신을 젊은 여인으로 표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녀는 젊은 여성이기에 과감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어린 청년에게 이끌린다고.

 나는 그렇게 살고 있을까. 어린 청년처럼, 젊은 여인처럼 살고 있는 걸까. 방구석 늙은이처럼 그저 관조만 해오던 것은 아닐까. 모든 걸 깨달은 사람처럼 흉내만 내오던 것은 아니었을까.

 해안도로를 달리는 내 곁으로 사라진 제주도의 여름 바다는 희고 푸르렀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어둠을 찾을 수 없었다. 검푸르다는 표현 따위는 도저히 붙일 수 없는 환한 그 바다는 자기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도 훤히 드러내 주었다. 연녹색 바위와 해초, 진회색 돌멩이와 조개처럼 입을 다문 자갈들. 그곳은 누구에게도 자기의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부끄러움이 없는 바다를 두고 나는 넋을 잃고 그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오 년 전 이곳에 올 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바다를 보지 않았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여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커플들을 보며 점수를 매기고 남자가 잘못했을지 여자가 잘못했을지를 속으로 가늠해보곤 했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부터 추한 여자까지, 가장 멍청한 남자부터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남자까지. 그들은 빙글거리며 돌아가는 원형 옷걸이처럼 내 눈과 손을 따라 서로의 순서를 바꾸어가며 저마다의 순위를 정했다. 내 욕망과 취향이 절대적인 기준이었고 그 밖의 어느 것도 이 작업에 끼어들 수 없었다. 나는 욕망의 지도에 따라서만 움직였고 목적을 이루거나 실패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바다였고 나이가 든 것은 나였다. 이제는 예전처럼 끌리지 않았다. 해장국집을 나와 해변을 기웃거릴 때도 내가 말을 걸만한 여자 한둘이 보였지만 나는 정말 예전과는 달랐다. 어쩌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오기 전에는 한없이 기대했는데 막상 와보니 여자들 뒤만 쫓아다니는 어린 녀석들의 꼴이 영 말이 아니었다. 연거푸 실패하다 보면 한 사람의 마음을 속이는 것 정도는 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것,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은 실제로 나를 움직이는 힘이 아니었다. 이 섬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 아마도 그런 기대와 희망이었을 텐데, 만약 그들이 더는 나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는 왜 집을 떠나와 이 먼 곳의 침대에 혼자 누웠을까. 바닥에 쏟아진 달빛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어리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는 건너편 테이블에서 궁금증 어린 눈빛이 찾아들어도 그것에 꾀여 나올 정도의 남자가 되지 못했다. 그때는 스물네 살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다. 겨우 그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도 누구든 말을 걸고 옆자리의 의자를 능청스레 뺄 수 있었던 건 내 나이 때문이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된 것이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제야 비행기와 버스에서 본 그들이 떠올랐다. 몸 아래쯤부터 올라오는 약간의 권태감과 무력감이야말로 비로소 한 사람에게 정착하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른다. 그런 무력감 없이는 누구도 한 사람과 삼십 년, 사십 년을 살겠다고 마음먹지 못할 것이다. 나도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걸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내 안의 무언가는 추억 속 내 모습과 오늘의 나 사이에 넓게 펼쳐진 바다를 자꾸만 알아보게 했다.

 함께 대학을 다닌 친구 하나가 한 번은 술에 취해 한 말이 있었다.

 “대학에서 만난 사람이랑 결혼하고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거야. 나오면 이제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날 수 없거든.”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녀의 말을 오래전 남자 친구를 회상하는 수준의 가벼운 푸념으로 들어 넘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때 만난 이들과 나는 미래를 약속하지 않았다. 그들의 속마음이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뿐만 아니라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느슨한 결속, 그 애매한 종속과 자유로움 사이의 불안한 긴장감을 우리 모두가 즐기지 않았나. 차라리 그 나이대에 이루어지는 바람이나 양다리는 넘치는 이십 대의 혈기를 적재적소에 해소해주는 대학 버전의 체육 시간이었다. 그렇게라도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다면 그 힘이 어디로 갈 수 있었겠는가.

 이제는 그런 힘이 사라진 듯했다. 아름다우면 그저 아름다울 뿐 그게 내 것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겨우 스물아홉에 이렇게 된 것이다. 마치 노인네처럼 커튼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보며 사라진 욕망을 아무런 그리움도 없이 되새기는 것이다.

 나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열어둔 창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이내 한 줄기 달빛마저 흔든다.

 뜻밖의 제주도 여행이 내게 알려준 건 나의 성장과 노화였다. 단 하루 만에 그것을 알아 버렸다. 이제는 예전처럼 돌아다닐 수 없고 예전과 같은 눈으로 여자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돌아다니는 사진사이거나 옷걸이거나 국부만 가린 알몸이거나 내가 손댈 수 없는 청초한 어림이었다. 너무 어린 여자는 성숙한 남자에게 부담스러울 뿐이다. 수년 전 숱한 여자들과 겪은 일을 이제 와 다시 가르치듯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늙었다는 표현이 딱 알맞았다.

 차라리 서울에 있을 때는 이런 기분을 느끼기 어려웠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더러는 잠만 자고 더러는 몇 개월간 깊은 관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헤어지더라도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인연이 아니구나, 또 반복되는 것이 있구나, 하지만 새로운 일도 있구나. 그런 정도의 깨달음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 허접한 욕망을 품고 돌아온 섬에서 내 나이 듦만 깨우쳐버린 것이다. 어린 녀석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럽거나 질투가 나거나 하는 것도 없이 그저 피곤하다는 생각만 드는 것이다.

 그 둘도 이제는 이십 대 중반이겠다. 만났을 땐 스물하나였으니 이제 여섯이겠지. 그래도 스물여섯은 나보다 어리다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왜 그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냈을까. 그렇게 허무와 아쉬움을 나서서 즐길 필요는 없었는데. 왜 조금 더 간절히 달려들어 보지 않았을까. 성현이에게 관심이 있는 척 연락해 함께 만날 기회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차라리 그렇게라도 했더라면 지금처럼 지나간 추억만 되새기며 할아버지처럼 툴툴대거나 신경질을 내거나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혜의 번호를 지우지 말 걸 그랬다. 성현이한테라도 연락해볼 걸 그랬다.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달빛이 드리운 수영장의 물은 반투명의 신비로운 빛으로 찰랑거렸다. 누구도 들어가지 않을 순간의 수영장은 바로 그때여야만 한다는 듯 아름다운 빛으로 나를 유혹했다. 지금 몰래 들어간다 해도 누가 알 수는 없지 않을까.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니 금세 수영장을 비추는 사각의 CCTV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아름다움을 눈으로만 보게 만든 호텔 주인을 생각하며 탁자에 놓인 자동차 키를 집어 들었다.

 여전히 나는 자유로웠고 비록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늘은 여행의 첫날이었다. 욕망과 야릇함으로 가득 찬 여행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내가 도착한 현재를 일깨우는 여행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잘 온 것이다.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그때 나는 그곳을 보았다. 검은 현무암이 넓게 펼쳐진 해안가, 서혜가 가고 싶어 했지만 결국 식사를 마친 우리가 바로 떠나는 바람에 가보지 못한 그 해안의 암석 지대. 이 파랗고 흰 바다 가운데 홀로 검은빛을 뽐내며 마치 깊은 바다의 한가운데처럼 해안을 점령한 그 현무암의 구릉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흘러내린 용암이 바다에 닿아 굳어버린 흔적들. 안에서부터 타오른 열기가 끝내 차갑게 식어 화석처럼 단단해진 암석들. 그곳에서 바다에 꺾인 달빛을 보고 싶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주차장 가운데로 자동차 엔진음이 울려 퍼진다. 과속만 안 하면 될 것이다. 이 시간에 돌아다닐 사람이 누가 있기나 할까. 나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창문을 내리고 호텔 밖으로 차를 몰았다. 바람은 차가웠고 길은 어두웠다. 그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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