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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Nov 12. 2021

갈증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21. 갈증



 내 기억 속 가로등은 노란빛이었다. 한때는 그게 자연스럽고 익숙했는데 어느새 하얀 불빛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태양전지 패널을 이어 붙인 가로등은 낮에는 전력을 모은 다음 일몰이 되면 알아서 빛을 발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어두워지면 알아서 전조등을 비춘다. 나는 그것을 사용만 할 뿐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도, 잔고를 확인하고 티켓을 결제한 휴대폰도 그랬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사용은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아는 건 벌써 여행의 첫날이 지났다는 사실과 남은 육 일간의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자기소개서 보내기에 열중해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해안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어디에 차를 세워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바닷가로 내려가는 통나무 계단이 나타나며 그 뒤로 작은 주차공간 몇 칸이 보였다. 사람들이 자주 내려가는 걸 알아차린 듯 시에서 임시로 주차장을 만든 듯했다. 혼자 차를 세우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늘어선 가로등 뒤로 보이는 호텔은 벽을 비추는 야외 조명만 빛날 뿐 객실의 불이 모두 꺼진 채 조용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암석들의 틈새로 찰랑이는 바닷물이 비로소 이곳에 도착한 나를 반겨주었다. 오 년이 지나서야 그날 지나친 이 해안가에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날과는 달리 나는 혼자였다. 울퉁불퉁한 암석 위를 걸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오늘 밤 내가 잠들지 못하는 까닭은 누군가 나를 생각하기 때문이라던 글귀를 떠올렸다. 고영민이라는 시인이 쓴 시였다. 그 부분을 기억해내려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찾아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날 성현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럴 필요까지야. 여기서 보면 되지.’

 이 물건은 너무 편한 동시에 나를 생각에 잠기지 못하게 했다. 그녀와 내가 꽃 하나를 발견한 것처럼 나도 이 자리에서 한 편의 시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쓴 시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한밤중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누군가 나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박자박 찾아든 당신, 나도 그를 찾으러 떠나고 빨갛게 물든 눈으로 당신을 기다리며 밤을 지새운다. 내가 알던 시와는 다소 다른 내용이었지만 필요한 문장은 단 하나였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기다린다는 것.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도 누구에게든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니 그건 작품이 된 것이다.

 구릉의 끝에 이르자 얕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달빛을 비단처럼 두른 바다는 낮에만 보이던 푸른빛을 잃은 채 노랗게 울고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바다가 지금 이곳에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왼쪽으로 몇 걸음 떨어진 검은 암석이 실은 웅크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구릉의 끝에 쪼그리고 앉은 긴 머리의 여자였다. 그녀는 코앞까지 내가 걸어올 동안 그 자세 그대로 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곳에 세워진 바위처럼 가만히 앉은 채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안정을 찾고서 나도 바다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녀가 나를 방해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녀를 그렇게 대해야 했다. 아마도 그게 달빛이 어린 이 바다를 보러 나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예의이리라.

 조금 덜 찬 달이 바다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태초에 사람들은 하늘을 먼저 알아차렸을까 달을 먼저 알아차렸을까. 나는 달이라 생각했다. 누구든 저 달을 보면 하늘을 잊을 것이다. 달이 하늘에 뜬다는 걸 알려면 충분히 오랜 시간 고개를 들고 저들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하늘에 달이 뜬다는 것은 글로 배운 사람이나 그리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달은 하늘에 뜬다고, 하늘 가운데 달이 있다고, 그러니 하늘이 있고 달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기의 두 눈으로 달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말하리라. 달을 보고 나서야 그곳에 하늘이 있음을 알았다고. 달을 보기 전에는 내 머리 위로 넓게 펼쳐진 그것이 하늘인 줄 몰랐다고 말이다.

 나는 너무 멍청했다. 잊히지 않는 몇몇 기억만 남기고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다. 추억하는 일에 낭만을 품는 건 젊은이의 특권이었다. 거머쥐는 일에만 신경을 썼지 남기는 일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성취하는 것은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이었다. 이직을 할 때도 여자를 만날 때도 그랬다. 그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교는 기술이었고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직장에서 필요한 기술이라면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연애에 필요한 기술이었다. 나는 그 일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그 일을 쉽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경험이 없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책임을 져야 할 때마다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잠식하도록 내버려 뒀다. 손해를 보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 인생과 직장에서의 생활을 교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정도로 가치 있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제대로 알아본 걸지도 몰랐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결국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대신 분명한 사실 하나를 얻었다. 아직 나는 내 인생과 교환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돌아보니 주차장에 세워진 차는 내가 타고 온 한 대뿐이었다. 옆에 앉은 그녀가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했다. 맞은편에 있는 호텔에서 온 듯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신은 플랫 슈즈는 먼 길을 걷기에는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 이 근처 어디에서 온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까만 카디건을 걸친 그녀는 밑단이 트인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집에서 막 나온 듯한 차림새의 그녀는 내가 오기 한참 전부터 이곳에서 바다를 보고 있던 것 같았다. 아무런 움직임이나 소리도 없이 가만히 앉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코앞까지 다가온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바다를 보러 나오신 거예요?”

 “아뇨, 달 보러 왔어요.”

 “좋네요. 저는 바다를 보러 왔는데 와 보니 달이 더 아름답네요.”

 “이게 다 차면 하늘을 덮을 듯이 커져요.”

 “달이 더 커질 수 있어요?”

 “음, 뭐랄까. 더 밝게 빛나며 크기도 함께 커져 보인다고나 할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조금만 더 있으면 다 찰 것 같은데.”

 “사흘이면 될 거예요. 저는 여기서 달을 몇 번 봤거든요.”

 “제주도 분이 아니신가 봐요.”

 “어떻게 알아요?”

 “여기에 살면 우리처럼 저 달을 보러 새벽에 나올 수 있겠어요? 어차피 한 달에 한 번씩 뜨는 달인데.”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아무런 조명 없이도 환하게 빛났다.

 “저는 제주도에 온 지 세 달째예요.”

 “혼자서 오신 거예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말이 작업성 멘트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건 그녀가 어떻게 듣기에 달린 것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그런 생각을 덜 수 있도록 나는 내 사정을 덧붙였다.

 “부러워요. 저는 여기서 지낼 수 있는 게 일주일 뿐이거든요. 시간이나 여유가 된다면 한 달 살이도 해보고 싶은데.”

 “저도 한 달 살이로 온 건 아니에요.”

 다행히 그녀가 말할 거리를 찾아냈다. 달을 보는 그녀의 곁에서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저는 남편이 있는데, 이런 것까지는 말 안 해도 되지만 아무튼.”

 잠시 내 기분을 살피려는 듯 살짝 눈을 돌리더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힘든 일이 있어서 잠깐 쉬다 오겠다고 했어요. 힘든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삶이 고달프다고 해야 하나. 오래 만나서 결혼한 사람이라 그런지 선뜻 그러라 하더라고요. 원래는 한 달만 약속했는데 돌아가는 날짜를 미루다 보니 벌써 이렇게 됐네요. 남편한테 미안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오래 계시는 데 그분도 괜찮다고 한 거예요?”

 “다행히도요.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행이겠죠?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삐뚤어졌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잘 모르겠어요. 내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들 잘 적응해서 사는데 나만 이렇게 부적응자처럼 구는 것인지. 정말 언니들 말처럼 내가 배부른 고민만 하는 것인지.”

 그녀의 사정을 모르지만 그녀의 마음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달을 보며 그녀가 좀처럼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이 풍경은 너무나 아쉬운 것이었다. 고작 해서 이곳을 떠나는 이유가 그 전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육지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나도 돈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이곳에 머물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녔을 것이다. 아무것도 잃지 않았지만 그녀도 나도 무언가를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 빈 곳에 흩어진 달빛만 주워 담는 것이다.

 “여기에 오래 있으면 돌아가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꺼낸 말은 막상 내뱉고 나니 이곳에 앉은 그녀를 향한 공격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저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맞는 말이에요.”

 앉은 채로 바다를 보던 그녀가 마침내 쪼그린 다리를 펼치고 일어섰다. 오래 앉아 있던 탓인지 갑자기 휘청거리며 파도에 젖은 암석에 발을 헛디딘 그녀가 내 쪽으로 기울어지고, 나는 그대로 쓰러지려던 그녀의 몸을 붙잡아 안았다.

 찰랑이는 파도가 우리의 발아래까지 포말을 일으켰다. 차가운 밤바람이 나와 그녀의 얼굴 사이를 스쳤다. 바닷가의 소금기 어린 냄새가 콧속으로 떠밀려 왔다. 비로소 나는 이 섬에 왔음을 알았다. 내가 처음부터 그리던 섬. 야릇한 기대와 흥분. 나는 그녀를 향한 강한 성욕을 느꼈다.

 “돌이 미끄러울 거예요.”

 안은 그녀를 풀어주면서도 나는 그녀의 손목으로 내려오는 카디건의 소매 끝은 놓치지 않았다. 플랫 슈즈를 신고서 조심스레 암석 위를 걷는 그녀도 그것에 대해서는 별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멀리 보이는 통나무 계단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지금 보이는 그녀의 순응적인 태도가 한번 보고 말 사이라는 그녀 내면의 인식에서 온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야기였다. 더 많은 솔직한 대화가 그녀로 하여금 우리가 운명적인 관계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녀가 한번 보고 말 사이라 생각했기에 허락한 소매 끝이 어쩌면 처음부터 내게 느낀 호감의 증거이자 우리 사이의 필연성을 암시할 복선으로 여겨질 것이다. 나는 많은 경험이 있었고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이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결국 해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드넓은 해안가의 현무암 구릉과 흰 바다, 쏟아지는 달빛과 무언가를 잃은 듯한 감정을 공유해버린 이른 새벽의 두 남녀라는 사건에 내 욕망을 던져 넣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격한 에너지가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아직 먼 계단만 바라보다 또 발을 헛디뎠는지 아픈 표정을 지은 그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내 것이 되리라는 걸 확신했다. 그녀의 눈빛에서 우연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려는 한 여자의 갈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갈망은 불안을 방패 삼아 잠시나마 버티고는 있지만 얼마 못 가서 무너질 것이었다.








 다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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