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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Dec 01. 2021

부끄러움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29. 부끄러움



 “가지 조림은 할 줄 알아?”

 “당연히 못 하죠.”

 “당연히가 어디 있니. 요즘 남자는 그러면 안 돼. 세상이 어느 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보여줄 테니 이 정도는 배워봐. 조림이 뭔 줄은 알아?”

 “그게 뭔데요.”

 “말 그대로 졸이는 거야. 굽고 튀겨서 익힌 거에다 양념장 붓고 졸이면 조림. 라면 끓일 때 국물 없어지는 거 본 적 없어?”

 “그런 거라면 짜파게티를 삶을 때 자주 겪었죠. 매번 냄비 바닥에 늘어 붙던데. 그래서 철 수세미로 긁어내야 하고.”

 “네가 누구랑 살지 참 걱정된다.”

 말끔하게 씻은 가지를 척하고 도마 위에 올린다. 꼭지 부분을 똑 자른 다음 길게 세워 세로로 절반을 가른다. 그리고 다시 절반을, 또 절반을. 이번엔 길게 잘린 가지를 나란히 놓고 가로로 짧게 자른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이제 식당에서 먹던 그 가지의 모양이 만들어졌다. 그녀가 내게 손짓하더니 프라이팬에 중불을 올리고 식용유를 두 바퀴 둘렀다.

 “이것 좀 볶고 있어.”

 “언제까지요.”

 “수시로 볼 테니 그만하라 할 때까지 계속 볶기나 해.”

 나무젓가락으로 녀석들을 뒤적이는 동안 그녀는 내 옆에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먼저 간장을 붓더니 어슷 썬 고추와 다진 마늘, 설탕과 물을 차례로 넣고 숟가락으로 쓱쓱 휘젓기 시작했다.

 “이게 다예요?”

 “이게 다야. 잘 볶았네. 이제 양념장 넣고 뚜껑만 닫으면 돼. 쉽지? 왜 이리 쉬운 걸 안 하려 할까. 한 번만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나가서 사 먹지 누가 만들어 먹어요.”

 “밖에서 먹으면 다 소금이야. 혈관에 안 좋단 말이지. 맛있게 하려면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집에서 만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이제 좀 비켜봐. 그래도 손 하나가 있으니 편하긴 하네.”

 얼마 되지 않아 완성된 가지 조림이 그릇에 담겨 식탁 위로 올라왔다. 그녀가 냉장고 문을 열더니 적당한 크기로 썬 오이와 양파가 담긴 플라스틱 통을 꺼냈다.

 “아씨, 양파 넣는 걸 깜박했네. 아예 따로 볶을까.”

 “쌈장이 있으면 그냥 먹어도 돼요.”

 “그럴래?”

 그녀가 김치와 쌈장을 꺼내 작은 접시에 나눠 담을 동안 난 우리가 먹을 밥을 펐다.

 “얼마나 먹을 거예요?”

 “거기 나무 주걱으로 한 숟가락 반.”

 겨우 밥그릇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이것만 먹고 하루를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정말?”

 “충분해.”

 “그럼 그때 꼬막은 어떻게 먹은 거예요?”

 “너무 배고플 때면 한 번씩 가서 먹는 거야. 그날은 너랑 먹으니 조금 더 고삐를 풀었고.”

 가득 채운 밥공기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한 입에 맞게 썬 김치와 양파, 오이와 쌈장, 그리고 우리가 만든 가지 조림 한 접시. 사실 같이 만들었다기엔 내가 들인 노력이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아무튼 나도 일조한 음식이기는 했다.

 “아이고, 국을 데웠어야 했는데.”

 막 한 술을 뜨려던 그녀가 이마를 치며 탄식했다.

 “뭘 또 빠뜨렸어요?”

 “너도 나이 들어 봐. 모든 계획이 한 번에 머리에 안 들어와. 하나를 넘기면 그제야 다음 게 생각난다니까. 에이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먹자.”

 그렇게 우리는 식사를 했다. 제주도에 와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집밥을 그녀의 집에서 먹게 되었다. 아직 눅눅해지지 않은 가지 조림이 잘 베인 양념장과 더불어 짭조름하면서도 달큼한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양파의 시큼함과 쌈장의 매운 맛은 가지 조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맛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집에 온 것 같아요.”

 “그러니? 신기하네. 나는 나온 지 세 달째인데도 혼자 사는 것 같거든.”

 “누나는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너도 서울에 집이 있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만.”

 “어머니랑 아버지는?”

 “두 분 다 고향으로 내려가셨어요. 어머니는 전라도에서, 아버지는 경상도에서 올라와 만났는데 이제 자식들도 다 컸고 굳이 사람들한테 치여 살고 싶지도 않다면서 내려가셨어요.”

 “아버지 고향으로 가신 거야?”

 “아니요, 목포요. 어머니 고향으로요. 아빠도 거기 음식이 더 맞는다 하더라고요.”

 당연히 남편을 따라 시골로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한 그녀는 의외의 대답을 듣고 입을 가렸다.

 “나는 아버지 쪽으로 가신 줄 알았지.”

 “처음에는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죠. 집을 장만한 곳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된 거예요. 나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었나 봐요.”

 “서울에 돌아가거든 한번 연락해. 밥이라도 사줄게. 이렇게 보여도 돈 없는 사람은 아니야. 근사한 곳에서 식사 한번 하자.”

 내게는 그녀의 말이 우리 사이에 선을 긋는 인사말처럼 들렸다. 묵묵히 밥을 먹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그녀와 나 사이에 오간 감정이 겨우 이런 사이에 국한될 것이었을까. 그날 밤 그녀의 소매 끝을 쥐고 암석 위를 걸었을 때 그녀는 오늘 일을 예상했을까. 나와 꼬막 요릿집에서 창밖의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을 때 그녀는 내 곁에 누운 자기의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았을까. 폭포에 이르러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녀가 나를 이끌고 그늘 밑으로 들어가 햇빛을 피하고 마침내 쏟아지는 폭포에까지 나를 이끌었을 때, 그때 우리 사이에 오간 건 고작해야 서울로 돌아가 밥 한 끼를 함께 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와 내가 주고받은 건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 따위가 아니었다. 그건 그녀도 알고 있을 터였다. 나보다도 경험이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 분명 그녀도 그것을 알 텐데.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 마음을 모르는 척 그녀는 밥을 먹고 있었다. 그녀의 젓가락에 집힌 가지 한 조각, 흐물흐물한 그 살 사이에 배인 갈색의 양념장과 고추 씨앗들. 방금 오이를 깨문 입가로 흐른 물방울과 달그락거리며 움직이는 빈 밥그릇. 내게 보이는 모든 것들에서 나는 그녀를 향한 욕망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분명히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처럼 자유롭지 않았다. 혼자 이 섬에 왔지만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이런저런 약속과 달리 그녀가 내줄 수 있는 건 정말 단 하루, 하룻밤이었다.

 문득 나는 그 하루에 만족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가 알게 된 한 사람을 이렇게 놓치기는 아쉬웠다. 언제나 기회는 한 번이었다. 그것이 지나고 나면 실패한 도자기처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불에 탄 흔적만 남게 될 뿐이다.

 하루에 만족하자. 한 번은 그녀도 실수로 받아들일 것이다.

 조금 더 먼 시간을 내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약속이 정 부담스럽다면 시간을 미루며 관계만 이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그녀는 두 달을 남편 없이 살아왔는데 앞으로 육 개월이나 일 년을 그렇게 산다 한들 더 불편할 것이 있을까.

 아직 그녀와 잠도 자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와의 먼 미래까지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관계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즐기기 어려운 영역에까지 넘어와 버렸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건 마음대로 내다 버리기에는 이 관계가 나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느새 우리의 관계는 짜릿함과 흥분에서 이해와 상실의 단계로 넘어가 버렸다. 내가 이런 관계를 원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내게 모든 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아 버렸고 그런 그녀를 방치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노루의 곁에 남았어야 했다. 성현이에게도 연락했어야 했다.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떻게든 서혜의 번호를 알아냈어야 했다. 그녀야말로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그녀에게 연락했어야 했다. 그들을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박제시켜 버린 게 내 잘못이었다. 그들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다 먹었어?”

 빈 그릇을 앞에 두고 잠시 휴대폰을 보던 그녀가 물었다. 오늘 밤은 그녀의 곁에 남고 싶었지만 별다른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빈 그릇과 접시를 들고 싱크대 앞으로 다가갔다. 반쯤 받아둔 플라스틱 바가지에 밥풀이 묻은 수저와 그릇을 담갔다.

 “놔두면 내가 정리할게. 바로 집으로 갈 거야?”

 어디로 가라는 말일까. 바로 가지 않아도 괜찮으니 더 머물라는 말일까. 이젠 이런 식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이어가기 싫었다. 분명한 걸 원했지만 아직 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건 너무나 분명한데, 정말 그것만을 바라며 이렇게 그녀의 곁을 서성거리는 것인데 언제까지 나는 속마음을 숨겨야 하는 걸까.

 아직 그녀는 젊었다. 말로는 다 늙은 할머니처럼 굴었지만 내 눈에 그녀는 젊고 아름다워 보였다. 아이를 갖지 않아서일까. 그리 고생하며 살아오지는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섬에 혼자 머물며 깊은 우울을 달래는 그녀의 삶은 생활비에 쫓기는 나 같은 사람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그녀의 말처럼 여유로운 삶이 그녀의 마음에 해가 된 걸지도 모른다. 이직에 이직을 전전하던 지난 수년간의 내게는 우울이나 분노가 깃들 여유가 없었다. 코앞에 닥친 문제만 해결하며 여태껏 지내왔다. 옮긴 직장의 동료들과 친해지는 것, 새로 맡은 일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 것, 이내 찾아온 허무와 권태를 이겨내는 것, 결국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것.

 어쩌면 이 여행은 잘못 온 게 아닐까. 그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삶에 그대로 머무를 걸 그랬나. 빤히 보이는 미래, 이십 년 뒤의 삶이 내다보이는 그 단조로운 생활에 머무는 게 정답인 걸까. 그녀의 말처럼 내가 어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 삶으로 돌아가라고 한 내 말을 듣고서 그녀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혹시 그녀가 마음 아파하지는 않았을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처럼.

 “미안해요.”

 “뭐가?”

 “아까 한 말이요. 그냥 가서 바람이나 피우라고, 애나 낳고 그렇게 살라고 했던 거요.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요.”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싱크대 한쪽을 보며 아까의 상황을 되짚어보는 듯했다. 나는 그녀가 사과를 받아주기를 기다렸다.

 “부끄러워.”

 그녀가 내놓은 대답은 내가 바라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지금도 부끄러워. 아까의 그런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 것 같아서 부끄러워. 사실 지금 이렇게 같이 있는 것도 참 어색해.”

 나는 그녀가 미웠다. 애써 가꾸어온 관계를 한순간에 탈바꿈시킨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를 향한 욕망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그러다 가볍게 서로를 잊을 수도 있었다.

 이제는 아니었다.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한 뒤로 우리는 전과 같은 가벼움으로 서로를 대할 수 없게 되었다. 식탁 위의 분위기는 진지했고 아까 있었던 일을 서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할 단계에 와 있었다.

 내가 기대하던 대로 일은 진행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안고 싶었다. 입술을 맞추고 씻지도 않은 채로 그녀와 눕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녀의 남편이라도 지금 그녀의 손을 잡아 침대로 이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 가볼게요.”

 그녀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

 가져온 것도 없는 내가 빈손으로 나올 동안 그녀도 슬리퍼를 신고 나와 나를 배웅해주었다.

 “거실에 커튼 좀 걷고 살아요.”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

 문밖에 서자 그녀가 내 손을 건드렸다.

 “내일은 뭐 하니.”

 “아직 안 정했어요.”

 “연락하고 오면 같이 밥 먹을 수 있으니까 미리 말해줘.”

 남편을 대하듯 하는 말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굳이 그것까지 지적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알았어요.”

 문이 닫히고 그녀가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문이 열리고 철컥하며 잠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어느새 집은 내가 올 때처럼 조용했다. 아직은 초저녁이었다. 멀리 산 너머로 기우는 해가 보였다. 영사기처럼 구름을 비추는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졌다. 어디론가 가고 싶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어디에 서든 이 섬에서는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이제 그 풍경이 싫었다. 나는 그만 이 섬을 떠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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