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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Nov 29. 2021

흰 점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28. 흰 점



 화창한 오후였지만 그녀의 집은 적막하기만 했다. 벨을 눌러도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살짝 밀자 그대로 문이 열리며 잘 관리된 마당이 보였다. 아까 그녀가 들어가며 대충 닫아둔 것 같았다. 여전히 마루에 난 유리창은 굳게 닫힌 채 안을 볼 수 없도록 꼼꼼하게 커튼이 쳐져 있었다. 어쩌면 그녀야말로 안에서 밖을 볼 수 없도록 커튼을 친 걸지도 모른다.

 현관으로 가는 자갈을 밟으며 그녀가 말한 배수로를 발견했다. 청소할 타이밍을 놓쳤다던 이야기가 생각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벽을 따라 마당 구석까지 이어진 배수로를 건너 그녀의 문 앞에 섰다.

 혹시 내가 불청객인 것은 아닐까. 그녀 혼자 쉬어야 할 시간에 함부로 들어와 방해를 하는 것은 아닐까. 자기가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남자를 보는 것을 싫어하는 여자가 대부분이지 않던가. 차라리 밖에서 시간을 때우다 오후 늦게나 올 걸 그랬나.

 “누구세요.”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잠긴 현관문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누나.”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갑자기 그러기는 멋쩍었다.

 “너니? 일찍 왔네.”

 “아까 벨 눌렀는데 못 들었어요?”

 “듣긴 들었어. 그런데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으니 일부러 안 나왔지. 바깥문은 어떻게 열었니.”

 이상하게도 그녀는 바로 열어줄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살짝 밀었는데 그대로 열리더라고요. 아까 누나가 들어가며 덜 닫았나 봐요.”

 “그걸 안 잠갔을 리가 없는데. 아무튼 일찍 왔네.”

 나를 들여보내 줄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나를 반기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긴 시간 머뭇거리는 그녀의 태도에 뜻 모를 서운함을 느꼈다.

 “너무 일찍 왔으면 그냥 돌아갈게요. 이따 몇 시쯤에 올까요?”

 “아니야. 왔는데 바로 돌려보낼 수는 없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문을 열지 않았다. 안에 다른 사람이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문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무언가를 숨기려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괜히 일찍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혹시 저를 보기 불편한 거예요?”

 “불편한 건 아니야. 내 상태가 부담스러운 거지. 바로 잘 줄 알았는데 못 자고 있었거든. 괜찮겠어? 아니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네가 모를 텐데 괜찮냐고 묻는 것도 이상하긴 하구나.”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이 자리에 우리 둘 외에 한 사람이 더 있는 것처럼 그녀는 자기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네가 지금 온다 해서 그리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저녁에 밥을 해준다 해서 온 거 맞지? 아직 저녁 시간도 아닌데 지금 오면 어쩐담. 그런데 내가 오랬으니 지금 왔다고 네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니고 바로 들어오는 게 맞긴 한데.”

 “나중에 다시 올게요.”

 “들어와.”

 마침내 문이 열리며 어둠에 잠긴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 바닷가에서 본 그날의 그 옷차림 그대로였다. 집에 있기에 카디건을 걸치지 않은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이내 어두컴컴한 공간의 한끝으로 사라져 버렸다. 천천히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겼다. 그녀는 조명 하나 켜 두지 않은 채 방 안에 혼자 머물러 있었다. 불이 다 꺼진 집 안의 공기는 어둡고 무겁기만 했다.

 “어디에 있어요 누나.”

 오른쪽으로 닫힌 문 두 개가 보였다. 아마 가까운 문이 안방으로 향하는 것일 거고 먼 문이 작은방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주택보다는 아파트에 가까운 익숙한 구조였다. 바로 앞으로 보이는 방이 화장실인 듯했다. 바닥에 깔개를 펼친 것을 보니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왼쪽으로 돌자 자그마한 LED 조명이 켜진 냉장고가 보였다. 주방과 거실은 벽도 없이 하나로 트여 있었다. 거실의 유리창을 숨긴 두꺼운 암막 커튼을 바라보던 중 조금씩 어둠에 눈이 익으며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릎을 감싸 쥔 그녀의 자세는 마치 엄마의 뱃속에 숨은 아이처럼 보였다. 그날 밤 한 덩이 암석의 모습으로 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달을 보던 그녀가 이 어두운 공간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누가 조각칼과 반죽을 가져다주며 직접 만들어 보라 해도 나는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자기 안에 갇힌 사람만이 내보일 수 있는 자세로 그녀는 이 어두컴컴한 방안에 자신을 방치해두고 있었다.

 “이러면 안 돼요.”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할 때 나는 불빛을 보았다.

 그 순간 맹렬히 날아와 내게 부딪히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어떤 형상이었다. 풀숲에 숨은 녀석이 항상 자기가 돌아가는 길로 나오던 도중 빠르게 달려오는 불빛을 발견하고 멈춰 선다. 녀석은 그 빛이 궁금할 뿐 그 뒤에 무엇이 달려오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곳에는 어둠뿐이므로, 보이는 것은 소실점으로 다가오는 한 점의 불빛뿐이므로. 그러니 가만히 멈춰 서 달려오던 불빛이 커다란 달빛에서 마침내 자그마한 점으로, 마치 바늘의 끝처럼 날카로운 빛의 칼날로 남을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린 것이다. 그 빛이 결국 커다란 어둠이 되어 그를 덮쳤을 때 나는 녀석이 기다린 빛인 동시에 녀석을 덮친 어둠이었다. 하룻밤에 벌어진 찰나의 사고나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숲을 떠돌던 녀석은 바보처럼 맹렬히 질주하는 나를 기다린 것이다. 그게 빛인 줄만 알고, 거대한 어둠인 줄은 모르고.

 “나를 기다렸어요?”

 그 자세 그대로 그녀가 대답했다.

 “잠을 잘 수가 없어.”

 손가락으로 쳐놓은 커튼의 작은 틈새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바닥에서 한 뼘 정도 올라간 커튼의 끝자락이 있었다. 그 작은 틈으로 오후의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볕이 너무 밝아. 너무 따갑고 괴로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볕이 너무 밝아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너무 볕이 따갑고 날카롭고 괴로워.”

 조금이라도 커튼을 내려볼까 해서 다가갔지만 그녀가 바로 비명을 지르며 나를 멈춰 세웠다.

 “그러지 마. 나도 해봤어. 그러다 아예 커튼이 떨어져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어. 그냥 놔둬. 제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줘. 고마워.”

 다음 행동도 보지 않고서 그녀는 고맙다는 말부터 꺼냈다. 천천히 그녀를 향해 몸을 틀었다. 두세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바닥에 앉았다. 내 뒤에는 텔레비전을 올려둔 선반이 있었다. 그곳에 살짝 등을 기대고 그녀와 같은 자세로 앉아서 무릎을 굽혔다.

 “하지 마.”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처럼 두 손을 내밀어 양 무릎을 감싸 안았다.

 “하지 말라고 했지.”

 “이렇게 앉아 있어요.”

 나를 보는 그녀의 눈은 그날 밤 노루의 그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누나는 지금 이렇게 앉아 있어요.”

 “그래서.”

 “누나가 보기에는 어때요. 지금 내가 앉은 모습이.”

 “나랑 같네.”

 “어떻게 보여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무릎 속으로 시선을 숨겼다.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눈꺼풀이 보였다. 그녀의 흰자위는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같은 동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지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치료하려 하지 마. 나는 병든 게 아니야. 나는 아프지도 않아. 오늘 하루 잠을 못 자서 평소보다 조금 더 피곤한 것뿐이야. 이것도 사실 네 탓이지. 네가 구태여 낮에 가자고만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도 평소처럼 잘 지냈을 거야.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햇빛이 너무 밝아. 너무 밝아서 잘 수가 없어. 너무 밝아서 견딜 수가 없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윤진아, 빛이 너무 따갑고 날카로워. 너는 이게 뭔지 아니? 이 감정이 어떤 건지 알아? 아무도 몰라.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알아. 나만 알고 있어서 너무 힘들어. 너무 괴로워.”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난 병든 사람이 아니야. 아프지도 않아.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래. 잠만 잘 자면 괜찮아질 거야. 오늘따라 내가 이상해 보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원래 괜찮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됐어. 나는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됐어.”

 그녀는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됐어. 기억이 나질 않아. 언제부터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아. 너무 괴로워. 너무 괴롭고 힘들어. 아무것도 못 하겠어.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할까.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삶이 너무 비참해. 이런 사람이 될 줄은 몰랐어. 너무 한심하고 멍청하고 어리석어. 나쁜 말을 다 갖다 붙여도 돼. 한때는 괜찮았는데 이렇게 됐어. 난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됐어. 그게 너무 억울해. 왜 나만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야? 누가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누나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녀의 무릎에서 찾아낸 두 눈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시인도 이런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누군가를 그리는 빠알간 눈이라니. 나는 슬픔이 어린 눈이 빨갛게 충혈된 모습은 알았지만 행복이나 기대에 젖은 눈이 빨갛게 변한 모습은 알지 못했다. 누군가의 눈이 빨갛다는 건 그가 진실로 슬퍼하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부질없는 낭만 따위는 우리의 삶에 끼어들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누나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날 누나가 나무 그늘 밑에서 얘기했잖아요. 어림이 누나를 지켜줬던 것 같다고. 그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누나를 여태 가려준 거야. 원래도 이런 사람이었는데 이런 모습으로는 사람들 앞에 나오지 않도록 도와준 거지.”

 “그럼 나는 어떡해야 해?”

 그녀는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해답을 제시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 섬에서 우연히 만난 어린 남자애가 자기에게 구원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건 새로움이나 환상, 드라마 같은 것이다. 그녀를 하늘 높이 띄워 올리는 것. 그곳에서 새로운 공기를 마시게 하고 아래와는 다른 바람을 느끼게 해주는 것. 나는 그녀의 바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커다란 달빛이었다. 노루를 향해 달려가는 날카로운 헤드라이트의 흰 점이었다. 그 점의 끝에서 거대한 어둠으로 변해 돌진하는 목적 없는 동물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희망도 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스스로를 가둔 이 긴 밤을, 이 어두운 방을 치고 달아나는 것뿐이다.

 “돌아가요. 돌아가서 남편이랑 살아요. 예쁘잖아요. 아직 몸도 가늘잖아요. 그냥 어떻게든 살아요. 살다가 죽으면 되잖아요. 왜 일찍 그런 생각을 해요. 그냥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어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말고, 혼자 나서서 상처를 찾아다니지도 말고, 계속 그렇게 살아요. 친구도 만나고 바람도 피워보고 아이도 키우고 남편이 외도하는 꼴도 보고 그렇게 속도 한번 터져보면서 살아요. 지가 늙으면 누나한테 돌아오겠지 어쩌겠어요. 그렇게 돌아오거든 큰소리 탕탕 치며 남은 인생 보내면 되잖아요. 그 삶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너는 아직 어려서 그래.”

 바람 피우라는 말에서 약간은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아는 척 좀 하지 마.”

 내게 손을 내밀었다.

 “휴지.”

 “어딨는데요.”

 “주방 식탁 위에.”

 그녀가 시키는 대로 휴지를 가져왔다. 그녀가 티슈 두 장을 뽑더니 킁 하고 코를 풀었다.

 “비염이 있어.”

 “더럽게.”

 그녀가 큰 소리로 웃었다. 나도 웃음이 나왔지만 억지로 참았다.

 “밥해줄까?”

 “네. 성질 더러운 사람이랑 드잡이질을 했더니 배가 고프네요.”

 “그 사람이 사실 마음씨는 착하대.”

 “밥하는 거 보고 말해줄게요.”

 “나를 무시하는 거야? 이렇게 산다고 해서 집안일까지 얕잡아보면 안 되지.”

 그녀가 일어섰다. 나는 또 그날처럼 그녀가 넘어질까 싶어 그녀를 잡아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뻗어 자기의 팔로 다가오는 나를 거절했다.

 “괜찮아.”

 혼자 주방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문득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불 좀 켜줄래?”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누르자 주방과 거실의 조명이 한꺼번에 켜졌다. 갑자기 밝아진 실내에 눈이 부신 나머지 우리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꼴이에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네.”

 아직 거실의 커튼은 닫혀 있었다. 싱크대에 물을 받는 그녀에게 물었다.

 “커튼 걷어도 되죠?”

 “그건 아직 걷지 마.”

 찬장에서 도마를 꺼내며 그녀가 말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아까처럼 그녀가 걱정되지는 않았다. 바구니에 물이 차며 물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다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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