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의 제목은 '아아'가 더 어울립니다. 작품마다 반복되는 '아아'를 보면 새로운 것, 다시금 깨달은 것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시인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면, 시집의 제목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지을 수 없습니다. 시집의 제목은 마케팅의 중요한 요소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이 시집 속의 작품들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아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대학 수업을 듣던 중 나이든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허리가 안 좋으셔서 허리를 지지하는 밴드 같은 걸 착용하고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정년이 가까워진 분이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자연법 연구에 바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 시의 마지막을 읽고 나니 생각이 납니다. 전설 하나가 전해져옵니다. 과거 교수님의 자녀분이 같은 대학에 입학하여 밤 늦게 술을 마시던 중 늦은 시간에 잘 곳이 없어 친구와 함께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와 소파에 누워 잠들었다고 합니다. 우연히 자기 연구실에 되돌아온 교수님이 이 광경을 보고는, 자녀분과 그 친구가 잠에서 깰 때까지 자기 자리에 앉아 책을 보셨다는 일화입니다. 여기에는 상식에 어긋나는 점이 많지만, 다투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일화가 어울리는 분이셨습니다.
가끔 나의 존재를 깨닫곤 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감각하고, 생각하는데도, 가끔 내가 존재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것마저도 소중한 때가 오겠지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바람
흐르다 멈춘 뭉게구름
올려다보는 어느 강가의 갈대밭
작은 배 한 척 매어 있고 명상하는 백로
그림같이 오로지 고요하다
어디서일까 그것은 어디서일까
홀연히 불어오는 바람
낱낱이 몸짓하기 시작한다
차디찬 바람 보이지 않는 바람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뚫고 지나가는 찬바람은
존재함을 일깨워 주고
존재의 고적함을 통고한다
아아
어느 始原에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시인, 마로니에북스,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