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잠든 지아비 사이를 빠져나와

최영숙, 동거

by 김세종

동거의 반대말이 무엇인지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동거란 서로 다른 존재가 한 데 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동거의 반대말은 별거이며, 여기서 별거란 서로 다른 존재가 따로 살지만 여전히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머지 동거의 반대말로 사용될 수 있는 건 독거입니다. 여기서 독거란 그가 누군가와 관계를 단절한 채 어디엔가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독거라는 단어는 반드시 한 곳에서만 살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든 독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인 '동거'가 별거의 반대일지, 독거의 반대일지는 시을 읽으며 알아내야 합니다.


별거는 보기보다 좋은 표현입니다. 여전히 상대방과 관계를 맺어두고, 다른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둡니다. 독거는 그 말 그대로 외로운 단어입니다. 독거는 발견되지만, 별거는 유지됩니다. 독거는 상상하지만, 별거는 추측합니다. 독거는 소멸하고, 별거는 고통을 줍니다. 독거의 반대편에 선 동거는 환상적입니다. 반면, 별거의 반대편에 선 동거는 현실적입니다. 따라서, 이 시에서 드러난 동거의 모습이 환상적인지 현실적인지를 살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시를 마주하던 이가 독거자인지 별거자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가 독거자인지 별거자인지를 알았다면 우리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만약 그가 독거자라면 그가 누구와 관계를 단절했는지, 그리고 그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를 물어봅니다. 만약 그가 별거자라면 그와 어떤 면에서 다른지,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와 맺고 있는 관계의 모습을 알아봅니다. 별거자가 맺고 있는 관계의 모습은 다양하기에 그에 대한 질문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독거자는 그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함으로써 그가 단절한 관계에까지 대답합니다.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루어지면 나머지는 그 대답 위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서 더 길게 쓰면 시를 읽는 맛이 떨어지겠지요?


동거



한밤에 일어나 보일러에 피 도는 소리 뼈와 살이 녹는다 아이와 잠든 지아비 사이를 빠져나와 듣는 새벽 다섯시 이것은 空도 色도 아니다 세상의 밥을 먹는 아이는 점점 자라 인간의 자식이 되어가고 캄캄한 우주의 자궁 속 제가 온 곳을 잊는다 色도 空도 아닌 혼돈 그것이 질서였을 한별에서 떨어져나온 알 수 없는 슬픔이 그의 일생을 이끌 것이다 우리가 약속하기를 어느 별에서 만나 한이부자리에 식구가 되어 나란히 뼈와 살을 누인다는 것이 몇겁을 벗고 다시 돈다 해도 이 땅만큼 선명하지 않으리 세상의 늙은 아비와 아이의 맑은 몸이 얽혀 만드는 저 별자리를 하늘에 부쳐 이름하면 무언가 내가 모르는 어느 먼 곳을 다녀와 아침에 깰 때면 나를 알아보기나 하려는가.



「모든 여자의 이름은」, 최영숙 유고시집, 창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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