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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n 14. 2023

4.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꼭 필요하다.

2020. 7. 15 수요일

  <아들 엄마 성장기 3>

  "00아, 오늘 학교에서 뭐했어?"

  "아 몰라, 그런 거 묻지마!"

   아들의 일상을 듣고 싶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 어릴 때부터 직장 일로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들의 이야기에 최선을 다해서 귀기울지 않은 탓이리라. 어른 눈에 신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종알 종알 말할 때, 이것 저것 궁금해서 물을 때 건성으로 지나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아들의 어린 시절에 직장 일이나 내 일신에 대한 생각 등으로 가득차 아들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탓이다.


  또 다른 어른 아들이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다.

  "여보, 당신 나 안 사랑하지?"

  "응"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라고? 안 사랑한다고?"

  "응"

  남편도 지금 한껏 자신의 일상 때문에 지친 상태다. 내 말이 귀에 들어올리가 없다. 하지만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 현재 집중하지 못한다면 대체 언제 집중할 기회를 찾는단 말인가?


   가까운 사람이 하늘로 떠났다. 불의의 사고였기에 사람들 모두 슬픔에 잠겨서 함께 했던 지나온 세월과 말과 행동을 후회한다. 하지만 후회는 후회일 뿐, 그 후회가 현재의 내 마음과 행동까지 변화시키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덧 없고 예상치 못한 삶의 마감을 마주하면서 그 분과 주고 받은 말들을 후회하고 슬퍼하지만 그 후회는 과거에 대한 후회일 뿐,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일은 여전히 진행중이란 사실을.

  ''너희가 하는 게 뭐가 있는데? 내가 결정하면 그냥 따르면 되지!"


  그 말들을 그냥 넘겨 버리기에는 참을 수가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가라앉았다 올랐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래 맏이니까 책임감이 더 느껴져 힘들었을 거야 이해하자 했다가, 그걸 아니까 나도 이것 저것 챙기고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쓴 것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간다. 감정의 널이 내 마음에서만 절대 끝나지 않는다. 결국 내가 제일 사랑하고 아껴야 될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다 똑같이 행동할 순 없다. 100만원을 버는 사람과 천만원을 버는 사람이 부모에게 주는 용돈의 크기가 같을 수 없고, 맏이와 맏이가 아닌 사람이 느끼는 책임감이 같을 순 없다. 부모 가까이 사는 사람과 멀리 사는 사람이 부모를 챙기는 정도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대대 손손 아들선호 사상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아들과 딸에게 부여하는 책임의 양이 다를 것이고, 씁쓸하지만 때론 사랑을 주는 정도도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아무튼 누구나 자기가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과 지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는 것이 이치일 것이다. 다른 여건과 상황에서 내가 하는 일들이 당신들이 하는 일에 비해서 가볍게 느껴진다고 해서 내뱉어서는 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건만 그동안 나의 노력과 애씀은 '너희가 하는 게 뭐가 있냐' 는 말 한마디로 멀리 멀리 구름처럼 사라져버렸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말들에 대응을 안하는 편이다. 그건 내가 마음이 바다 같이 넓어서가 아니다. 그냥 참고 있을 뿐인 것이다. 말재주가 없어서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면 상대방과 갈등이 생기기 때문에, 그 갈등이 마음을 더 힘들게 하기 때문에 대응을 안하는 편이다.

  이런 회피는 결국에 문제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요즘은 할 말 하기 연습 중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말을 하지 않고 참을 버릇만 해서인지 생각을 표현한다고 내뱉은 말들이 싸움 비슷하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것도 또 나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고약한 버릇 때문에 스스로 나를 또 싸움꾼이라는 단어 속에 가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억누를 수 없는 화를 스스로 가두거나 불씨를 잠재우지 못하고 여기 저기 터트리는 꼴이 됐다. 하지만 이 과도기를 거쳐야 나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요즘은 많이 든다. 우리 아들의 반항과 거친 행동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하지만 이 시기를 거치는 것도 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일주일을 혼자 분노하다가 손위에게 전화를 했다. 한 시간을 울면서 하소연하는데 차분히 들어주셨다.

   그리고 끝에 한 마디만 하신다.

   " 00가 성격이 그래서 그래."

   니가 힘들었겠다고 편도 안 들어주셨고, 상대방이 왜 그러냐고 험담을 하신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위안이 되는 건 뭔지 모르겠다.

   누구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들어주는 사람이.

   나도 우리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아들의 어린 시절에 집중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며 앞으로의 시간은 아들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에 귀기울여야겠다. 

   요즘은 핸드폰을 보다가도 아이가 말을 걸면 바로 꺼 버리고 눈을 바라본다. 아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나를 찾는 이 순간이 앞으로 많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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