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것
언어, 표정, 몸짓 하나까지 온전히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대부분 부모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때의 그 행복감은 앞으로 인생에 아무런 두려움도 어려움도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결혼을 하면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마음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가치관이 다른 서로의 부모에게도 생각을 맞추어야 된다. 거기다 부모가 되면 싸움은 더 잦아지고 서로 맞지 않는 육아관에 충돌하고 때론 서로의 피곤함에 양육을 떠밀기도 한다. 반대의 상황이라면 너무 이상적인 결혼을 한 거라서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내 결혼 생활은 그렇지 않았기에.
부모가 된다는 건 무한 책임을 동반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실천하는 건 아니다. 거기다 부모가 된다는 게 뭔지 교육받은 적도 없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나를 키워온 부모의 방식대로 양육을 하고 그게 최선의 방법인 양 착각을 하고 아이를 키운다.
요즘은 육아 프로그램, 육아서도 많으니 다르게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많다. 현명함이 철철 넘쳐서 밝고 맑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학급에서도 보면 그런 부모들의 아이는 눈빛부터 다르다. 눈빛에 사랑이 넘친다. 말에 온화함이 묻어있다. 주눅 들어 있지 않다. 해맑다.
육아서를 꽤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순간은 읽는 게 지겨워질 정도였으니까. 우리가 밥을 적당히 먹는다고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섭취되는 것도 아니듯 육아서를 읽지만 정작 필요한 양분은 다 빠져나가고 남은 것이 없다. 밥을 많이 먹으면 체하듯이 많이 읽으니 이 말이 저 말 같고 심드렁하기까지 하다.
밥을 먹을 때 만들어 준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내 몸을 생각해서 맛있게 먹어야 건강해질 것이다. 육아서도 그런 마음으로 읽고 소화시켜야 되는데 어떨 땐 의무감으로 읽고 때로는 내가 이렇게 많이 읽었는데라는 어쭙잖은 자부심을 가져보는 데서 끝나버린다.
육아서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실천이 동반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권을 읽어도 파고 파고 또 파고 내 몸에 습득해서 내 것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데 이 말이 저 말이고 저 말이 이 말이네라고 느낀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육아서를 읽지 않고도 22 어린 나이에 시작된 결혼을 잘 헤쳐나가셨다. 아이 넷을 키우면서(오빠 포함 다섯) 화 한 번 안 내셨다. 엄마는 큰소리를 내는 적이 없었다. 싸울 일이 있으셔도 우리 앞에서 큰소리를 내지는 않으셨다. 없는 살림에도 정갈한 밥상을 차리셨다. 오빠가 아픈데도 힘들다 투덜거리신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모시면서 정성을 다하셨다. 오죽하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며느리 손을 붙들고 내가 너 아픈 거 다 가지고 갈게라고 하셨을까. 엄마는 그렇게 헌신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사신 것 같다.
32 막바지 늦은 나이에 결혼한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힘들다 하소연이다. 큰아들에게는 소리도 질렀다. 아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싸우며 깜짝깜짝 놀라는 아이에게 미안할 뿐 그게 끝이다. 또 반복이다. 식재료를 버리기 위해 사는 것처럼 음식쓰레기가 되게 하는 일도 다반사인데 밥상은 빈약하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다는 변명을 하며 힘들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내 운명을 탓했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물론 우리 부모님의 양육도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엄마는 힘겨움을 견디며 무표정으로 일관하셨다. 잔소리는 없지만 소리는 안 지르지만 언제나 무표정하셨다. 엄마의 젊은 시절 웃는 얼굴은 기억하려야 기억할 수가 없다. 부모의 말만 자식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표정 하나 몸짓 하나 아이들은 관찰하고 또 살핀다. 엄마는 왜 저리 무표정할까 뭐가 힘든 걸까? 엄마의 고달픔을 자라면서 점점 공감도 하겠지만 그런 표정의 엄마를 보는 아이는 함께 무표정이 되어간다. 함께 우울한 아이가 되어간다.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이라는 책에서 말한다. 말로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7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고. 나머지는 눈및, 말투, 억양, 태도 등으로 전달된다고.
아버지는 돈을 버는 것이 가족을 지탱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신다. 자식과 대화도 안 하신다. 아버지는 항상 무서운 존재였다. 가장 가까워야 될 가족인데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부모가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하지 못하면 아이는 그것을 느끼기 힘들다.
사랑이란 건 내가 널 사랑해 말만 한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가 된다는 건 아이를 낳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밥만 먹인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밭의 채소가 잘 자라도록 잡초를 뽑아내고 물도 잘 주고 비가 오면 지지대를 해주고 태풍이 불면 다시 한 번 나가 살펴야 되듯이 매일매일 온 마음으로 신경 쓰고 정성을 기울여야 된다.
아이는 그냥 자라지 않는다. 부모의 언어, 표정, 몸짓 하나하나를 보며 나름의 생각을 하고 마음의 밭을 키우며 자라는 존재다. 그런 아이에게 밝은 표정을 지어야 될 것이고 맑은 언어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고 안아주는 등 사랑의 몸짓을 다해주어야 한다. 부모의 언어,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모두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
감정을 수용해 주면서 행동에 한계를 그어주는 부모, 일관되게 행동하는 부모, 단호하지만 친절한 부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부모. 부모 되기란 끝이 없는 고행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될 고행. 내 아이가 잘 자라서 대한민국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부끄럼 없이 잘 살아가길 바라본다.
사진 -법륜스님 행복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