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백종원 씨가 나오는 대화의 희열을 보았다. 백종원은 외할아버지가 어릴 땐 본 사주에서 거대 기업을 운영할 팔자라고 들었다고 한다. 그 말 하나에 어릴 때부터 갖가지 사업 비슷한 걸 했고(앞부분은 보지 못해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치킨집에서 인테리어 가게, 인테리어 가게를 하면서 알게 된 동네 부동산 집 사장님을 통해 쌈밥집을 인수하게 된다.(이것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 당시 부동산에 식당매물이 쏟아질 때 허세 비슷하게 내뱉었던 말 때문에 약간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쌈밥집을 인수하게 된 거라고 한다.)
식당일에는 관심도 없던 백종원 씨가 조리장 아주머니를 한 분 구하게 되고 경상도식 막장을 내놓는 걸 보고 쌈장을 어떻게 만들어 보라 권유를 하게 된다. 지금 골목식당에 나오는 방식처럼 자기 쌈장과 조리장 아주머니의 쌈장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경쟁 비슷하게 했다가 본인의 쌈장이 손님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장사와 음식에 대한 희열을 조금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식당이 잘되었고 동시에 인테리어 가게에서도 목재를 수입하여 목조 주택을 건설하게 되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되지만(신문에도 나왔더라. 잘되는 사람은 이렇게 일도 잘 풀리네.) IMF로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그래 운수 좋은 날처럼 모든 일이 항상 끝까지 좋은 법은 잘 없는 것 같다.)
식당이 잘 될 때 손님들에게 굽신굽신 과잉 친절을 베풀던 백종원 씨는 인테리어 가게에서는 사장 행세를 하며 식당에서 쌓인 분노를 풀었다고 한다.(두 가지 케이스 모두 진심은 결여된 느낌이다.)
그리고 IMF를 겪은 후에는 내가 분노를 쌓을 정도의 친절, 내가 허락하지 않는 범위 내의 과잉 친절은 베풀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진심을 다했다고 한다.
(불필요하게 서론이 길어졌다.)
'자존심과 진심 사이'라는 자막이 텔레비전에 흐르고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출근을 해야 되는 관계로 텔레비전을 끄고 나오며 나의 직업적 태도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았다.
직업적 사명감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직업적 사명감만이 이 직업을 지탱해 주지는 못한다. 요즘은 증가하는 민원 때문에 교사도 철저한 서비스맨이 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근무지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직업적 사명감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못난이 교사가 된 느낌이 이었고 못난이 교사 취급을 받았다.
이후로 나의 직업적 사명감은 오히려 민원을 받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조금 변화한 듯하다.(진심이 예전보다 사라진 거다.)
예전보다 더 과잉친절을 부모한테 베풀지만 딱히 진심이 100퍼센트는 아니다. 과잉 친절로 인해 내 감정은 학교에서 다 소모되고 녹다운되어서 집에서는 예민한 바늘이 되어 내 아이들을 대했다. 아니 예민한 바늘이라도 되면 차라리 다행인데 에너지가 없다. 아무런 에너지가.
워라밸을 외치는 요즘 사회에서 내 일과 삶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면 나의 진심이 빠진 과잉 친절도 벗어버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함량이 부족한 불친절한 교사는 아닌데 말이다.
부모들도 성인이므로 분명 본인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부분과 알아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는 부모들이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관찰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 드리면 되고, 그것과 관련해서 나는 학교에서 내 몫을 하고, 부모님들은 가정에서 본인들의 몫을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오지라퍼 같은 모습,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자존심에서 기인한 쓸데없는 힘 빼기를 던져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진심을 다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지나친 오지랖과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자존심으로 힘을 빼다 보면 워라밸이 깨져서 가정에 해를 끼치게 된다. 가정이 조화롭지 못하면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교생활이 엉망이면 또 가정에서 애들에게 화를 내거나 불편한 모습을 보인다. 악순환의 연속일 뿐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진심과 자존심 사이'에서 차라리 진심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내 능력의 범위에서 진심을 다하는 것. 내 능력을 넘어서는 범위까지 침범하지 않으려는 마음 자세. 어쭙잖은 사명감과 내가 좋은 교사로 인정받아야 된다는 자존심보다 진심을 다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아침 10분 동안 본 짧은 프로그램에서 내 삶의 태도에 대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2019년 3월쯤에 끄적여 놓은 글입니다. 아침에 텔레비전을 볼 여유가 있었던 건 가출(?)을 했기 때문입니다. 병가를 낸 후배의 원룸에 일주일을 있었더랬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한 선택이었고 남편도 동조를 했었죠. 근래 상담을 받으며 아들이 유기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힘들었을 아들의 마음보다 너무 힘든 내 마음이 우선이었던 때입니다. 제가 우선 살아야 됐거든요. 항상 지나온 일은 후회하지요.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아마 저런 선택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 시절의 저는 과연 견딜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애들 밥을 먹이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여유롭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후회하지 않고 앞을 보겠습니다. 이제 절대 이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기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