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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고 싶으나 혼자일 수 없는 엄마 자리

by 나무 향기

결혼 - 결국엔 혼자인 게 낫드라.

이혼 - 이제야 깨달았다. 혼자인 게 낫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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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보다는 낫드라 할 때 저분의 표정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깊은 후회를 표현하는 같아 잠시 웃었다.


화요일 개학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그대로 졸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일해야 되는데, 월급 받는 만큼 몫을 해야 되는데 라는 끊임없는 책임감의 마음과 잠 사이에서의 싸움은 결국 졸음의 승리였다. 부끄럽고 화가 난다. 제대로 일하지 못함에. 머리는 멍하고 두통은 밀려오고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졸고 있었다. 두통약을 매일 먹었다. 왜 머리가 아픈 건지 이유도 알 수 없고, 일할 시간에 졸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고 누군가 교실 문을 드르륵 열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조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집에 오면 어김없이 두통은 몰려왔고 멍한 상태로 하루하루가 지났다. 금요일 저녁부터는 목이 따갑기 시작하고 콧물도 채이기 시작했다. 토요일은 종일 잠만 잤다. 오후가 되니 기침이 시작되고 온몸이 쑤시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살의 전초전이 그렇게 길었던 모양이다. 수액이라도 맞으러 가고 싶었지만 결국 그냥 침대에서 붙박이인 채로 집에 있는 종합감기약만 먹으며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몸은 온통 땀에 절었고 근육통은 계속이다. 잔잔한 기침들 속에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어질러진 책상도 치워야 되고 다음 주 먹일 것도 생각해야 되고 세금도 납부해야 되고 도서관 책도 반납해야 되고 해야 할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토요일은 종일 남편이 밥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배조차 고프지 않아 잠만 자고 있는 나를 깨워 갈빗살과 각종 채소들을 먹어보라고 채근을 했다. 입맛이 하나도 없었지만 억지로 한 끼를 채웠다.

큰아들과는 사사로운 말다툼으로 관계가 안 좋아져 서러웠는데 아침밥을 달라고 해서 억지로 주고 나니 엄마 어디 아파 멋쩍어하며 묻는다.

남편은 오늘도 출장을 떠났다. 새벽녘 콜택시가 지연이 돼서 결국 역까지 태워다 주고 왔다.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가는 게 곤욕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트렁크에서 남편이 캐리어를 내리지 않은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주차장에 오자마자 트렁크부터 열어보았다. 다행히 짐은 내리고 없었지만, 이렇게 쓸데없이 날 근심하게 하는 허당남편이라니.


혼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까지도 땀 뻘뻘 흘리며 자고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잠들 속에 다음 주 먹을거리 걱정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좋긴 하다.

일주일 내내 빵쪼가리나 씹거나 컵라면이나 먹거나 단 것으로 몸속을 완전히 채우고 있겠지. 멋쩍은 물음이나마 어디 아프냐고 묻는 사람 하나 없을 것이고 아마 48시간쯤 잠만 자고 있는 나를 들고 깨워 뭔가를 하게 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 허리는 아플 데로 아플 것이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몸의 근력과 에너지는 다 빠져나갈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인 건가?


남편을 태워주려고 아들을 먹이려고 일어나다 보니 책도 조금 읽고 글도 조금 쓰고 있다.

잠 속을 헤매면서 이 따위 문장력 없는 글을 자꾸 써대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가, 얼핏 잠이 깨서 알람이 와 있는 작가님들의 글을 보면 그런 마음이 더 강해졌다. 나는 대체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건지. 정말 안 써야지 했는데 조금 힘이 나니 또 노트북을 펴고 있는 내 모습은 대체 무엇인지 나조차도 이해가 힘들다. 그나마 이런 글이라도 쓰고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인 건가?


여전히 혼자인 느낌이다. 남편은 또 출장을 가버렸고, 아들은 잠시 엄마 걱정을 하더니 게임에만 몰두하고 작은 아들은 일찌감치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분명 혼자인 것 같은데, 혼자일 수 없는 이 상황이 졸음과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것만큼이나 싫고 떨쳐버리고 싶은 상황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서 잠에서 깨어났고 미역국으로 허기를 채웠고, 이렇게 자판 앞에 앉아 횡설수설도 하고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인 건가?


결혼이란 걸 선택했기 때문에 혼자이고 싶으나 혼자일 수 없는 상황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나가야 된다. 어차피 죽을병에 걸리지 않은 이상 몸을 일으켜 일상은 채워나가야 된다. 나의 일상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족들과 공유될 수밖에 없고 나의 일상에 가족들의 일상이 침범할 수밖에 없다. 내 일상이 엉망이 되면 가족들의 일상도 함께 허물어진다. 아직까지 미성년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에.


세상 모든 엄마들이 다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고 살아갈 것이다.

남편도 셋째 아들이란 말을 들은 마당에 내가 엄마 노릇을 하지 않으면 가정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니 오늘도 아픈 몸 일으켜 남은 시간과 내일을 준비해 본다.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일 수 없는 엄마 된 자리.

웃자고 한 말처럼 혼자인 게 낫더라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지만 사는 데까지는 혼자 말고 같이 사는 삶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근육통과 함께 글쓰기도 통증 투성이. 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내가 봐도 모르겠고 어지러운 글들. 어지러운 책상만큼이나 어지러운 글. 퇴고도 없이 그냥 발행. 노트북을 덮고 힘내서 집 청소를 해야겠다. 이게 그냥 엄마들의 삶이다. 물론 아빠들의 삶도 비슷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것에만 열중할 수도 없고 이리저리 시간 쪼개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삶. 아프면 결국 가정만 허물어지니 건강은 평소에 잘 챙기는 걸로.

정말 끝까지 어지러운 글이다. 내 브런치도 청소가 필요하다.


한 줄 요약 : 엄마로 사는 한 혼자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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