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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Sep 06. 2023

급식과 헤어질 결심

"영양사 선생님, 다음 주부터 급식 중단이 가능할까요?"

"네~알겠습니다. 급식하신 부분만 징수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큰 키에 덩치는 커졌는데 여기저기 아픈 곳은 바짝 말랐을 때보다 더 많아졌다. 체중 탓인지 족저근막염이 왔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고 빈혈은 거의 10년째 친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건 건강의 문제가 제일 크고 미관상의 문제도 당연히 한몫한다. 불어난 허리 사이즈며, 두 단계나 건너뛰어버린 옷 사이즈에 옷장은 미어터지지만 못 입는 옷들만 계속 늘어가고 있다. 차려입기 좋아하는데 눈에 안 차니 면티에 청바지 입고 매일 출근하고 싶어 진다. 안타깝게도 청바지도 이것저것 다 탱긴다.

 

 1년에 딱 1킬로씩 불기 시작한 게 벌써 6년이 되었다. 매년 병원 건강검진 결과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1년에 1킬로는 아무것도 아닌데 6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인 지금의 몸무게는 놀랄 일이다.


 저울에 올라서서 숫자 2개를 보고 있노라면 나만 아는 사실인데도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스러웠다. 사실이 아닌데도(아닌가, 사실일지도.) 게을러서 쌓인 몸무게라는 생각이 자꾸 사람을 괴롭혔다.

 '그래, 요리를 제대로 안 해서 이렇게 된 거야. 게을러서 안 움직이니 저런 숫자를 보게 된 거지. 움직이기 싫어하는 집순이니 오죽할까?' 등등 자책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체중을 줄여야 했다.

 3월부터 6월까지 출퇴근도 걸어서 하고 퇴근 후도 열심히 걷고 주말은 거의 15킬로미터를 걸었다. 당연히 체중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거기다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108배 수행도 했다. 108배를 하고 나면 희한하게 0.2가 딱 빠졌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겨우 1킬로씩 줄여 4킬로를 감량했다. 한 달에 1킬로밖에 안 빠진 건 걷는다고 또 겁 없이 먹어댔기 때문이다.

  감량했다고 하지만 결혼 전이었다면 엄청 부끄러워할 체중이었고, 아이를 막 낳고 나서의 몸무게에도 못 미쳤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조금은 가벼워진 무게 때문인지 족저근막염도 희한하게 싹 나았다. 그리고 바지고 치마고 허리가 살짝 남아돌아서 너무 상쾌했다. 만족감과 함께 모든 건 멈춰졌다. 7월부터 걷기도 멈추고 맘대로 먹었더니 원상 복귀에다가 2킬로가 더 불었다. 요요 친구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내 몸 여기저기 살포시 앉았다.


 2개월 사이 6킬로가 불어버렸다. 차라리 다이어트를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되었다.

 어쩔 도리 없이 넋 놓고 지내다가 족저근막염이 너무 심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결론이 났다. 탄수화물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폭신한 빵도 달콤한 과자도 못 먹는다니. 김치에 밥 한 그릇이면 언제나 만족스러웠던 식사도 못하게 된다니. 고민을 거듭하다 다음 주부터는 급식도 끊기로 했다.


 모든 선생님들의 온전한 영양 공급원 급식.

 급식을 끊어야 하다니. 더군다나 우리 학교 급식은 정말 맛있다.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를 하나 뽑으라면 단연코 급식이다. (과밀학급이라 30명 넘는 인원, 모자라는 특별실, 과학 보조 선생님도 없는 상황, 돌봄 교실을 비워줘야 되는 학급, 방과 후 수업 교실이 따로 없어서 교실을 빌려주니 일주일에 2번은 온종일 소음에 노출되는 분위기, 가뜩이나 좁은 운동장 한 편을 덩그랗게 차지한 모듈 교실. 동네에서 만나면 같은 학교 직원일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100명 가까운 교직원 수.) 아무 장점이 없는 학교에서 제일 자랑거리 급식. 그런 급식을 끊다니. 아들 군대 보낼 때도 이렇게 슬플까 싶다.

 엄마랑 살 때야 급식이 그다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내 수고를 거쳐야만 완성되는 식사 앞에서 엄마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급식 시간만 되면 반찬 하나 양념 하나 밥 한 톨 앞에서 경건해진다.

 '내가 이걸 만들려면 대체 몇 시간을 수고해야 되는 것이야. 오늘도 너를 맛있게 한껏 먹어줄 것이야!'

 당연히 맛있게 남김없이 먹었다. 급식이 없으면 출근하는 기쁨도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런 급식과 당분간 헤어질 결심을 했다. 급식 일수를 헤아려 급식비를 징수해야 되는 영양사 선생님은 귀찮고 번거로울 거야, 급식비 계산이 깔끔하게 10월부터 헤어지는 게 낫지 않겠니? 온갖 핑계를 대며 잠시 고민을 거듭하다, 일단 다음 주부터 가능한지 쪽지를 보냈다.

 아마 안된다는 답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급식한 부분만 징수하겠다는 영양사 선생님의 빠른 대답이 나에게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 주사위는 던져졌고 물은 엎질러졌다. 브런치로 치자면 발행 버튼은 눌러버린 셈이고 쇼핑 장바구니의 결제 버튼을 열심히 클릭한 셈이 되었다.

 물론 주사위는 다시 던지면 되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받고, 발행은 회수하고, 쇼핑은 반품하면 된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취소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왕 결심한 거 매몰차게 헤어져 보기로 했다.


 낮에 급식과 헤어지고 저녁에 탄수화물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건장한 체격의 내가 탄수화물 부족으로 교실에서 쓰러지게 되는 건 아닐까?

 탄수화물 부족으로 극도의 예민함에 아이들에게 불친절해지는 건 아닐까?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별 쓸데없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해본다.


 급식과 헤어지고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위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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